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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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악마의 달
사납게 그려 낸 욕망과 해방된 영혼의 분연한 절규 오늘날 아일랜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한 소설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로 평가받는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제일 대담한 작품 『8월은 악마의 달』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작렬하는 태양과 쪽빛 바다가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남프랑스의 호화스러운 휴양지를 배경으로, 이혼한 뒤에야 비로소 종교적 엄숙주의와 구태의 억압적 성 역할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아와
저자
에드나 오브라이언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24.10.18

 

아들이 없을 때, 손님이 없을 때는 요리하는 것이 서글펐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자인 삶을 공식화하지 않으려고 서서 먹었다. 

 

자신을 은은하게 감싼 사랑의 광채 덕분에 현명해진 것, 앨런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곧 만날 것이고, 앨런은 또 활짝 열릴 것이다. 남자의 존재가 강물로서 앨런의 초원 같은 몸으로 흐를 터다. 

 

(과일가게 사람과의 대화)

태양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란. 악마 같아요, 과연 그렇죠. 사악합니다, 악마처럼. 

 

앨런은 잘생긴 남자가 보이면 매번 접근할 계획이었다. 이 짧은 여행은 일종의 탐사였다. 

 

앨런은 열린 창문을 통해 자신과 달 사이로 미끄러지는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드디어 진짜 인생을 사는구나. 알딸딸한 채. 

 

시드니가 키스를 원해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곁에 바비가 있는 만큼 오늘 밤은 황량하지 않을 것이므로 키스마저 참을 수 있었다. 앨런의 모험과 희망은 전부, 자신을 조종하고 매혹할 수 있는 유형의 남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위한 것이었다. 

 

다시 살고 싶은 유일한 시절은 신혼 몇 달뿐이었다. 앨런은 더 많은 것을 갈망했다. 사랑을, 안정감을. 마치 정신적 당뇨병 같은 것에 걸려서 지금껏 받아 온 것들은 온데간데없이 잃어버린 듯.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은 가고 없었다.

 

얼굴과 달리 손은 사랑받지 못하는 자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한가. 간 호보제를 먹고. 돈을 따고. 하지만 그보다 더 단순한 행위, 포옹하고, 구애받고, 하룻밤 숨을 헐떡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대대적인 세뇌가 시작된다. 여자는 정숙해야 한다는 교리의 가르침 사이사이로 끼어드는 은밀한 메시지, 남자와 남자의 몸이야말로 진정하고 절대적인 위로라는 것.

 

여기는 8월이 가장 멋져. / 가장 사악하겠지. 앨런이 말했다. 사악함을 향한 자기 자신의 애처로운 분투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든 좋은 여자로 살자고 건배했다. 

 

아일랜드, 시골, 가난, 전형적인 가정, 발그레한 뺨, 간호사가 되려고 런던 상경, 환자들에게 사랑 받고, 사랑받는 걸 사랑하고, 암 화나의 배를 갈랐다가 바로 봉합하는 광경을 보고 수술실에서 도망치고, 내 안에 간호사를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고, 등기소에서 신부님 없이 결혼하고, 신앙을 버리고, 곧 아들을 낳았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은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렸고 우리는 헤어졌어. 좋은 여자 퇴장.

 

결혼이라는 게 그렇잖아. 모든 걸 망쳐버려. 

결혼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문제야. 앨런이 말했다. 일반화는 지긋지긋했다. 


앨런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가 우스꽝스러운가, 수치스러운가, 비극적인가, 고고한가.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미숙함에 관해 생각했다. 

 

햇볕, 살갗이 얼얼해지는 햇볓만을 앨런은 갈망했다. 다리를 쭉 펴고 눈을 감은 채로 햇볕에 흠뻑 젖어들며 햇볕이 강해지고 더 강해져서 다른 사람은 모두 달아나고 태양이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를 기도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몫의 햇볕을 훔쳐 가고 있다고 믿었다. 살갗이 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태양이 몸속으로 침투해 순수한 불꽃으로서 팔다리에 흘러들며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이제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았다.   

앨런은 조금씩 변했다. 살갗이 붉은색 금색으로 물들었다. 하루 낮이 지날 때마다 빛깔은 조금씩 더 진해졌고, 밤이 되면 얼른 내일 아침이 와서 불의 세례식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잠들었다. 앨런은 슬퍼야만 했다. 집에 가야만 했다. 흐느껴 울어야만 했다. 하지만 희게, 엷게, 무력하게 변해 가는 열기의 세계 밖에 있는 것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앨런은 (남편에게) 바로 앉아서 말할 수 있을까. 나 늑장 부리는 거 아니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힘을 기르는 거야.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야. 바비가 말했다.

절대 이겨 내지 못할 걸.

이겨 내라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이렇게 즐거운 밤은 처음이야.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아들이 죽고 금세 행복을 되찾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들이 살아 있을 때도 항상 어머니의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아들에게 애정을 퍼부으며 좀처럼 떨어지지 못하다가도 하룻밤이면 시내로 나가 미친 짓을 하고 싶다는 거센 갈망에 사로잡혔다. 어머니의 의무 같은 것은 몇 시간, 아니 며칠, 아니 몇 주쯤 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비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난은 향수와 마찬가지로 앨런이 폐기한 감각이었다. 이런 낱말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비하면 미미할 뿐이었다. 해변에서 보낸 날들은 빛바랜 꿈이었고, 오직 질병만이, 앨런 주변의 대기와 도로의 돌, 지나가는 자동차만이 실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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