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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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계절
한국문학 최고의 유산인 박완서를 다시 읽는 「박완서 소설전집」 제2권 『목마른 계절』. 1931년 태어나 마흔 살이 되던 1970년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저자의 타계 1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된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의 결정판이다. 2011년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창작 활동을 펼쳐온 저자가 생애 마지막까지 직접 보고 다듬고 매만진 아름다운 유작이기도 하다. 마구잡이로 뒤섞이고 무너져
저자
박완서
출판
세계사
출판일
2012.01.22

 

 

6월

 

[캠퍼스 잡목에서 마주친 준식]

"여기는 내가 맡아 놓은 명당자리란 말야. 누구 허락을 받고 마음대로 침입했지?"

"학교엔 잠이나 자러 오시나요?"

"오오라, 그러고보니 유you는 학교가 뭣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신입생이군"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밉상을 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향아와의 대화]

(꾸미라고 잔소리하며) 마치 중성 같아. 왜 그런지 알아? 그건 네가 여자라는 짜릿한 자각에 눈떠야 할 시기에 엉뚱하게도 무산계급이란 자각에 눈떴기 때문이야." "그리곤 주제넘게 무산계급인지 피압박계급인지를 위해 무엇인가 투쟁해야만 될 것 같은 열띤 사명감에 얽매여 있고 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세상이 어둡고 어렵기만 한 걸까? 생각하기에 달린 거야. 세상 돌아가는 일 말고도 여자들의 번뇌는 얼마든지 있어. 분홍빛 번뇌 말야. 사랑의 번뇌를 갖는 거야. 여자가 구태여 어느 계급에 속해 있을 필요가 있을까? 너는 얼마든지 예쁠 수 있는 젊은 여자만으로 충분한 거야. 네 마음먹기 나름이야."

 

6월의 태양은 강렬하고 가로수는 싱그럽고 가뭄이 계속되는 날의 아스팔트를 축이는 살수차의 물줄기는 상쾌하다. 살고 있는 기쁨이 물줄기처럼 거침없이 피부에 끼얹혀 온다. 사는 건, 6월에 사는 건 소다수처럼 맛있다. 

 

[해맑은 걱정을 하는 향아를 바라보는 진이]

그러나 네가 알고 있을까. 어떤 아픔을 모를 게다. 모르니까 네 아름다움엔 그늘이 없다. 맹하고 공소하다. 

"행복하니?"

(향아) "그럼 할 수 없잖아. 난 불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게 태어난걸." 

 

[북으로 연이어 가는 군 트럭을 바라보며] 

머리 위에 플라타너스가 처량하게 짙푸르다. 철모와 군복과 대포를 위장하기 위해 6월은 이다지도 무성한가? 비로소 진이에게 섬뜩하니 전쟁의 실감이 왔다. 그와 함께 꿈에서 깨어난 듯 차차 모든 것이 또렷히 잡혀왔다. 

그렇지... 전쟁이 살육과 파괴만이 목적이 아닐진대 반드시 썩고 묵은 질서의 붕괴와 찬란한 새로운 질서의 교체가 뒤따를 것이 아닌가? 

 

분명코 새롭고 찬란한 날이 밝으리라는 희망찬 흥분과 한 가닥의 이유 모를 불안...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관념적이었던 것이 드디어 그 실재를, 참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음을. 

 

[국군들의 시체를 보며] 

그곳은 너무도 밝고 너무도 행인들의 시선과 가까웠다. 살육과 파괴가 따르지 않는 전쟁이 어디 있으랴. 전쟁의 명분을 얼굴로 치면, 살육과 파괴는 내장이다. 내장은 누구나 갖고 있으면서 그 노출에 혐오를 느끼는 게 누구나의 생리다. 아름다운 얼굴에 아름다운 내장이 따를 리도 없다. 결국 문제는 내장이 아니라 초면에, 얼굴도 내밀기 전에 내장부터 내보이는 그 무신경과 잔혹성이다. 그녀는 다시 그녀가 지금 화내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당혹하고 만다. 잠깐 소녀적인 감상이었다고 스스로를 바로잡는다.

(혁명이 아닌가? 그리고 난 보통 행인들과 다르다. 적어도 혁명을 예견했고, 투쟁력도 만만찮다. 나는 오늘 환호하고, 감동하고 할 그런 의무가 있다.) 

 

한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한결같이 어제의 그들보다 몰라보게 초라한 모습으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닐 텐데 갖가지 천의 붉은 헝겊을 옷긴에 변명처럼 달고 그리고 오늘 아침의 굴속 식구들과 신통히도 닮은 그 눈치꾸러기 같은 표정들로 서로서로를 훔쳐보며 바쁘지도 느리지도 않게 오가고 있었다. 

 

[오빠와의 갈등]

열의 시선은 막 부풀려는 그녀의 감동을 지그시 누르고 무언가 생각에 잠기게끔 하는 것 같아 두렵고 싫었다. 그녀는 무조건 감동하고 싶었다. 반의무적인 절박한 심정으로 어떤 크나큰 감동이 일 계기 같은 걸 찾느라 온종일 헤매지 않았던가. 

 

7월

먹을 게 없다는 건 얼마나 깜깜하고도 구질구질한 절망일까? 

세속적인 영욕에의 체념이 그들로 하여금 세상물정에 아둔하게 만드는가 보다. 

 

[학교로 피한 열]

그는 자기의 행운이 대견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 살벌한 난리통에 그토록 완전무결한 낙토를 자기만이 알고 있다니. 은밀하면서도 이기적인 기쁨에 그는 분별없이 취해 있었다. 

 

[진이네 집에 숨있는 사촌 철수에게 공산주의 책을 건냈더니 거절당한 진이]

"난 책만 붙들면 숫제 빠져버리는 성질이니까 오빠도 책을 좋아할 줄 알았어."

"소련놈의 것에만 빠지는 성질?" / "흥 나는 문학소녀 따윈 질색이더라. 살림도 못하고 허황한 꿈만 꾸고."

"난 법관 지망자가 제일 싫더라. 건방지게 주제넘게 인간이 인간을 감히 심판할 수 있을 것 같아?" 

 

[학교에서] 

당, 인민, 충성에 또 충성, 애국적 영웅적에 또 거듭 애국적... 온통 애국, 충성, 라디오도 신문도 학교에서도 길에서도 들리는 음악도 시각도 온통 애국만을 하기란 얼마나 고단한 노릇일까?

일순의 휴식도 용납됨이 없이, 정열이 고조된 애국 충성의 연속이 실제로 가능할까? 애국의 과로는 때때로 그녀를 몸살 나게 했다. 아픈 곳이 분명치 않으면서도 꼼짝할 수 없는 중병 같기도 한 육신과 정신의 허탈 상태가 왔다. 

 

[순덕과 화진] 

이 상탠 더 미칠 것 같아요. 감정의 기복이 용납 안 되는 팽팽한 투쟁, 적의의 연속 말예요.

 

8월

진이는 S대 민청에서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에 초조해하지만 그 초조감조차 날로 희미해진다. 그녀는 어느 틈에 유화진이나 현민처럼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일을 순진하게 경악하며 그 일에 몸을 담기를 꺼리게 될수록 그 일에 방관자이기를 바라는 이른바 자유주의 근성이 농후한 몇몇 중의 한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완장을 시큰둥하게 두른 녀석이 발악하듯이, '항공, 항공'을 외친다. 가로수 밑에 납작하게 엎드린 진이는 전쟁이란 미친 지랄이다, 미친 지랄에 장단 치느라 배까지 고픈 건 억울하다 싶다. 

 

[열과 진이]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길엔 온통 여자들뿐이야. 허다한 여자들이 안 하는 게 없더라."

"흥 나도 이제 알아듣겠어요. 시골에까지 바람이 부니까 이젠 또 그런 억척스러운 여자 치마폭에 숨어서 세상을 바끔히 방관하고 싶은 거군요. 그렇겐 안 될걸요."

 

[징용병이 된 열] 

그들마저 미아리고개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갑자기 주위에서 깊은 한숨과 애끓는 오열이 시작된다. 거의 미친 듯이 아무런 분별없이 무턱대고 행렬의 꽁무니나 따르던 여인들이나 여기서 이렇게 우는 여인들이나 다 같이 끌려간 이들의 가족. 그리면 열이 말고도 그렇게 많이 어디로 갔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거처가 이렇게도 가슴 에이게 소중한데 그것을 마음대로 하는 비정의 거인은 누구일까? 

 

 

전쟁이 아닌가. 아무도 응성 부리거나 위무받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자기 몫의 재앙은 조만간 자기 몫이다. 제가끔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감당해야 할 일이 비탄이나 비탄에의 위무가 아닌 '생활'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냉엄한 생활의 자세를 취했다. 

 

9월

배고픈 천국, 그런 거야말로 저 지옥 밑바닥으로 꺼져라. 전쟁도 아울러. 

 

민의 주위에 있는 전쟁을 통해서도 변절할 줄 모르는 답답하고 얌전한 여인들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산다는 근원적인 것을 빼먹고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며 무엇 때문에 추억 따위를 되씹으려 드는 것일까? 딱하고 답답했다. 

 

[다시 서울을 되찾고] 

교회당의 뾰족한 지붕 위에 태극기가 선명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하늘이 하도 깊게 푸르러 진이는 눈이 시다. 눈이 시어 눈물이 날 것 같다. 

 

10월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가 북괴의 만행을 향하는 데만 그쳤을까? 어쩌면 그 분노에는 그 끔찍한 만행의 발길 아래 무방비의 국민들을 내던진 채 살짝 도망가버린 정부에 대한 원한도 곁들었음 직하건만 정부는 끝내 오만했다. 오만, 다만 승리자만이 걸칠 수 있는 권위 있는 의상. 그러나 관용 또한 승리자만이 띨 수 있는 품위 있는 미소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승리자는 좀처럼 미소를 띠려 들지 않았다. (...) 다만 무자비한 복수만을 허용했다. 

 

빨갱이와 흰둥이의 죽고 죽이는 일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색은 없는 것일까? 설핏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가을 하늘같이 푸른 색깔은 없는 것일까? 설사 그런 제3의 색이 있다손 치더라도 혼자서 그런 색깔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외로워서. 

 

11월 12월

사람들의 생활이 뿌리째 뽑혀 이동하고 뒤섞이고 하는 틈서리에 끼어듦으로써 부역자로서의 고독과 자격지심에서 구제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1월

"걱정할 거 없어요. 우리가 고비를 넘기는 게 아니라 고비가 우리를 넘길 테니까요. 우리는 조금도 우리의 힘이나 의사, 소망을 걸지 않아도 고비는 저절로 우리를 넘겨줄 거예요."

 

2월

봄이 와야겠어요. 빨리. / 봄은 지금도 오고 있을걸 뭐. / 우리들의 미래도 오고 있겠군요. 

[준식에게 사랑을 약속해 달라는 진이] 

글쎄 이 통에 무슨 약속을 할 수 있을까? 옳지, 죽지 말자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죽지 말자고 그거나 약속하지. 

 

3월

진이는 울컥울컥 치미는 혐오감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릴 만큼 노파가 싫었다. 늙음과 가난에 무지몽매까지 겹친 추함이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추함일까?

그칠 듯 끊어질 듯 힘없이 그러나 결코 그침이 없이 면면히 계속되는 노파의 푸념은 곧 그녀의 살겠다는 끈덕진 의지의 발로였고, 진이는 그게 소름 끼치도록 징그러웠다. 

 

4월

빨갱이라는 따돌림, 그 맹목적이고도 잔학한 편견, 소위 민심이라고 하는 완강한 사람들의 고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진이는 6.25, 9.28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래서 동족상잔의 이념의 싸움은 무기로 살상되는 수효보다는 혓바닥으로 살상되는 희생자의 수효가 더 많게 마련이었고, 무사히 이 난리통을 넘기자니 총탄을 피하기보다 남의 눈치를 살피고 재빨리 영합하기에 한층 신경을 쓰게 마련이었다. 

 

제발 우리 식구가 무사하기를, 제발 우리 식구만은 다치치 않고 전쟁이 서울을 넘어섰기를, 그들은 별로 약지도 악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좀 더 살아서 조금쯤 더 행복을 맛볼 권리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느 틈에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을 부르려다 만다. 암만해도 우습고 어색하다. 그녀에게 하느님이란 늙은이들의 신음소리 같은 거였다. '아이고'라든가 '에구구'라든가와 마찬가지인. 

 

할 일이 전연 없는 봄날의 하루란 얼마나 징그러운가. 

 

며칠이라도 좋다. 붉지도 희지도 않은 다만 푸른 하늘 밑에 있다는 것은. 

 

내 식구의 염려로 내가 무사하듯이 내 염려로 내 식구가 무사하기를.

 

5월

그리고 공기... 그 맛있음! 색색가지의 행복과 색색가지의 불행의 가능성이 용해된 감칠맛 있는 공기의 맛, 사람 살아가는 재미, 보람, 가능성의 풍성, 풍요가 있는 그 무미의 맛있음! 자기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함부로 어떤 거대하고 무자비한 힘에 의해 틀에 부어지고 마는 끔찍스러운 일을 당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자유로운 공기의 그 맛. 

 

[역사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이다음 세대가 우리 세대가 겪은 광기를 이해할까요? 이데올로기의 싸움이란 미친 지랄을, 그 잔학의 극을, 그 몸서리쳐지는 비정을, 그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숱한 짓들을."

"언젠가는 이야기하고 이해시켜야겠죠." 

"그 끔찍한 일들을 저 애한테 이야기할 순 없어요(...)내 아들이 또 누군가의 가슴에 총구멍을 내줌으로써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 할 순 없어요. 미친 지랄은 우리 세대로써 마감해야 돼요."

"그렇지만, 이 동족간의 전쟁의 잔학상은 그대로 알려져야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특히 오빠의 죽음을 닮은 숱한 젊음의 개죽음을, 빨갱이라는 손가락질 한 번으로 저세상으로 간 목숨, 반동이라는 고발로 산 채로 파묻힌 죽음, 재판 없는 즉결처분, 혈육간의 총질, 친족간의 고발, 친우간의 배신이 만들어낸 무더기의 죽음들, 동족간의 이념의 싸움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런 끔찍한 일들을 고스란히 오래 기억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왜요? 무엇 때문에? 무용담이나 훈장도 허구 많은데."

"그야 전쟁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 무용담, 훈장이 판을 치겠죠. 또  싸움터에 꽃핀 휴머니즘 이야기라든가 전쟁 중에 치부한 이야기 같은 것까지도.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란 자칫하다간 사람마다에 잠재한 호전성이랄까 영웅심이랄까 그런 걸 자극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전쟁이란 해 볼 만한 거다'라고 생각까지도 갖게 할지도 모르죠. (...) 그러니까 결국 오빠의 죽음의 경우 같은 참혹의 기억, 학살의 통계, 어머니의 경우 같은 후유증, 이런 것만이 전쟁을 미리 막아보려는 노력과 인내의 밑바탕이 도리 수 있을 거예요. 툭하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저쪽에선 '수령이나 사회주의 낙원을 위해서라면' 일전도 불사할 결의를 보여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치졸한 애국애족에서 깨어나 더 깊이 생각하게 될 거예요. 결국은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사람을 잘살게 하기 위해 사람이 만들어낸 거지 이데올로기 나고 사람 난 건 아니잖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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