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 되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숫제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심술궂은 인간도, 착한 인간도, 야비한 인간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방구석에서 이렇게 연명하면서, 현명한 인간이라면 진정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오직 바보만이 뭐든되는 법이다,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표독스러운 위안이나 하며 나 자신을 약 올리고 있다. 그렇다, 19세기의 현명한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우선적으로 성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면 성격이있는 인간, 즉 활동가는 우선적으로 꽉 막힌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또 이렇게 더러운 짓을 저질렀다, 일단 저지른 일은 절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하느 것을 강렬하게 의식하고 그걸 빌미로 남몰래 속으로 나 자신에게 이를 갈고 또 갈고 나 자신을 물어뜯고 쥐어뜯으며 못살게 굴고, 그러다 보면 쓰라림이 마침내는 어떤 치욕적이고 저주스러운 감미로움으로 바뀌고, 마침내는 단연코 진지한 쾌감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이 쾌감은 바로, 자신의 굴욕을 너무도 선명하게 의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엇다. 즉,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는 것을, 이건 추악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출구도 없고 절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령 뭐든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자기 스스로 그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임을, 설령 원한다고 한들 사실상 마땅히 변할 대상이 전혀 없을 테니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쾌감이생기는 것이다.
불행한 생쥐는 원래 있던 하나의 추잡한 것 외에, 이미 그토록 많은 다른 추잡한 것을 의문과 의심의 형태로 자기 주위에 잔뜩 쌓아 버리고말았다.
나는 (자연의 법칙) 그것과 타협하지 않을 텐데, 그 이유는 오직 나한테 돌벽은 있지만 그걸 뚫을 힘은 나한테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돌벽은 흡사 진실로 위안이 되고 진실로 평화를 위한 무슨 말이라도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오로지 그것이 2x2=4이기 때문이다. 오, 어처구니없음의 극치로다! 모든 것을, 모든 불가능성과 돌벽을 이해하고 의식하는 것이 차라리 훨씬 낫다. 만약 타협하는 것이 역겹다면 이 불가능성과 돌벽 중 단 하나와도 타협하지 않는 것이 낫단 말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뭘로 보나 명백히 당신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가장 불가피하고 논리적인 결합을 통해, 돌벽에 대해서조차 흡사 왠지 자기가 죄인이라는 영원한 주제에 매달려 가장 혐오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말없이 무기력하게 이를 갈고 음탕하게 관성 속으로 침참하여 성질을 부리려고 해도 사실 그럴 상대가 통 없다는 몽상에 젖는다. 정말 그럴 상대가 없다, 어쩌면 영영 없을 거다, 이건 도박판에서 남의 순을 속여 슬쩍 패를 바꿔치고 사기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건 그냥 잡탕이다, 하는 식의 몽상인데, 뭐가 뭔지도 알 수 없고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통 영문을 모르겠고 속임수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쨌거나 아프고, 영문을 모르면 모를수록 더욱더 아픈 것이다!
어쨌거나 자연의 법칙은 꾸준히, 무엇보다 평생을 두고 나를 모욕해 왔지만 그럴 땐 자연의 법칙을 탓할 수도 없었다. / 이 모든 참회, 이 모든 감동, 이 모든 갱생의 맹세가 죄다 혐오스럽게 꾸며진 거짓이다, 하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자기 자신을 병신으로 만들고 괴롭혔는가, 하고 물을 텐가? 대답인즉 이렇다. 즉, 가만히 팔짱을 끼고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지겨웠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재주를 부려 본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자신을 좀 더 살펴보면, 여러분, 여러분도 정말로 그렇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다보니 스스로 이런저런 모험담을 고안해 내고 삶 자체를 지어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권태 탓이다, 여러분, 전부 권태 탓이다, 관성에 짓눌렸던 것이다. 실상 의식의 그야말로 합법적이고 직접적인 열매는 바로 관성, 다시 말해 멍하니 팔짱끼고 앉아 있기이다. / 모든 즉혹적인 사람들과 활동가들이 활동적인이유는 그들이 우둔하고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은 꽉 막혀 있기 때문에 제일 가갑고 부차적인 원인들을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쉽게 자기 일의 확고한 근거를찾았다고 확신하곤 그렇게 마음을 놓는다. /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마음을 완전히 편히 갖고 아무런 의심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 예컨대 나 같은 이간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진정시킬까? 내가 버팀목으로 삼을 만한 근본적인 원인들이 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근거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런 것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나는 사유하는 연습을 하고 있고, 따라서 내 경우엔 어떤 것이든 하나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장 다른 원인을, 더욱이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끌어내어,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게 바로 온갖 의식과 사유의 본질이다.
근본적인 원인이니 뭐니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잠깐만이라도 의식을 쫓아내고서 맹목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흠뻑 젖어 보라. 그저 팔짱을 낀 채 멍하니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증오하든지, 사랑하든지 해 보라는 것이다.아무리 늦어도 모레면, 뻔히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경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결과적으론, 비누 거품과 관성뿐이다. 오, 여러분 내가 스스로를 현명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직 평생 동안 뭐 하나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수다쟁이라고 한들, 우리가 죄다 그렇지만, 설령 백해무익하고 짜증나는 수다쟁이라고 한들 어떤가. 어차피 모든 현명한 인간의 그야말로 유일한 사명이 수다, 즉 머리를 굴려 공소한 잡담을 늘어놓는 데 있다면, 어쩌란 말인가.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간에 절대 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꼭 그래야만 한다. 자기 자신의 의지적이고 자유로운 욕망, 아무리 거친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변덕, 이따금씩 미쳐버릴 만큼 짜증스러운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환상, 이 모든 것이 바로 저 누락된 이익, 즉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체계와 이론을 끊임없이 산산조각 내 버리는 가장 유리한 이익인 것이다. 대체 무슨 근거로 저 모든 현자들은 인간에게 뭔가 정상적인 욕망이, 뭔가 선량한 욕망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일까? 무슨 근거로 인간에겐 반드시 합리적으로 따져 유리한 욕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상상했던 것일까? 인간에겐 필요한 것은 오직 독립적인욕망 하나뿐이다, 이 독립성이란 어떤 대가를 요구하든,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간에, 거참, 대체 욕망이라는 게 뭔지...
이성은 오직 이성일 뿐이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욕망은 삶 전체, 즉 이성과 온갖 긁적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 전체의 발현이다. 그 발현에 있어 우리의 삶은 종종 너저분한 꼴이 되기 십상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삶이지, 한낱 제곱근 개평방법 따위는 아니다.
(여러분은 이익이 되지 않을 걸 뻔히 바랄 일 없다고 하지만) 인간이 정말 어리석다 못해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을, 심지어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일부러, 의식적으로 바라는 경우가 한 번, 정말 딱 한 번은 있다. 다름이 아니라,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을 바랄 권리를 갖기 위해, 오직 현명한 것 하나만을 바랄 의무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다. / 이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한 것,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개성을 보존해 준다.
인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모든 목적은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이 끊임없는 과정에, 달리 말해 삶 자체에 있는 것이지, 어차피 2x2=4가 될 수밖에 없는 목적 자체에, 즉 공식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참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희극적으로 생겨 먹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그렇게 확고하게,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오직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것 하나만이, 한마대로 말해서 오직 안락 하나만이 인간에게 이롭다고 확신하는가? 무엇이 정말 이익인지를 놓고 이성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실상 인간이 안락 하나만을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고통도 딱 그만큼 사랑하는 건 아닐까? 혹시 고통이라는 것도 딱 안락만큼이나 그에게 이로운 건 아닐까? 인간은 이따금씩 고통을 끔찍이도, 죽도록 좋아한다, 이건 사실이다.
내가 옹호하는 것은 나 자신의 변덕이요, 또한 필요할 때마다 내가 마음껏 변덕을 부리는 것이 보장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의식이란 것이 내 생각으론 인간에게 있어 크나큰 불행이라고 말했지만, 인간이 그것을 사랑하여 그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Part 2
축축한 눈이 솜덩어리처럼 펑펑 쏟아졌다. 나는 외투를 열어젖혔다, 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다른 걸 모두 잊은 건 따귀를 갈겨 주겠노라는 결심을 완전히 굳혔기 때문이며 그것도 지금, 반드시 지금 당장 그렇게 될 것임을. 이미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멈출 수 없음을 공포감과 더불어 느꼈기 때문이다.
음울한 생각이 나의 뇌 속에서 생겨나 어떤 징그러운 감각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갔는데, 꼭 곰팡이 슨 눅눅한 지하로 들어가는기분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열을 올렸다. 나는 이미, 방구석에서 열심히 곱씹은 나의 성스러운 이념 나부랭이를 피력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뭔가가 갑자기 내 안에서 불타올랐고 어떤 목적이 ‘현현’했다.
인간이란 자기 괴로움을 세는 것만 좋아하지, 자기 행복은 아예 세질 않아. 만약 제대로만 센다면 누구나 자기 몫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리자, 우선 자기 자신부터 사는 법을 배우고 난 다음에야 남을 비난할 수 있는 거야!
그때 나는 권력이, 권력이 필요햇고 놀이가 필요했고, 너의 눈물을, 너의 히스테리와 굴욕을 쟁취할 필요가 있었어, 바로 이런 게 그때 나한테 필요햇던 거라고!
네가 여기 있으면서 내 말을 들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내가 너를 증오하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겠어? 사실 인간이란 평생에 딱 한 번만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 법이고 그나마도 히트레시 상태에서지!
그녀는 이 모든 얘기를 듣고서,진심으로 누굴 사랑하는 여자가 늘 제일 먼저 이해하게 될 그것을 이해했다. 바로, 나야말로 불행한 인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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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중
값싼 행복과 숭고한 고뇌 중 무엇이 더 나을까.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 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나 많이 유리되었는지 진짜 ‘살아 있는 삶’에 대해서는 때때로 어떤 혐오감마저 느끼고, 또 이 때문에 누가 우리에게 이걸 상기시키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다. 실상 우리는 ‘살아 있는 삶’을 노동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거의 업무로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다들 속으론 책에 따라 사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는 쪽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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