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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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 줄거리 열아홉 살 시안은 학교가 끝나고 매일 병원에 간다. 식물인간 상태로 늘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서다. 엄마는 몇 년 전 온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전염병 프록시모에 감염된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전문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과 시안, 아빠가 돌아가며 엄마를 돌보지만 엄마는 깨어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족만은 특별하다고, 서로를 지켜 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엄마의 손발을 주무르고 엄마의 소변 통을 비울 때마다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열아홉 살 해원(지원)은 평범하게 남자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매년 프록시모 백신 접종을 할 때면 식은땀을 흘리며 손이 떨린다. 해원의 가족이 슈퍼 전파자가 되어 지역 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 후로 해원은 ‘김지원’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개명하여 동네를 떠나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피해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남들처럼 남자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시안은 우연히 해원의 오빠 해일을 마주치고, 잠적 후 일상을 회복하며 살고 있는 해원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말에 시안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한때 쌍둥이 자매처럼 지냈던 해원을 찾아간다. 엄마가 회복되었다고 속인 채 해원에게 접근해 예전처럼 가까워지며 과거의 좋았던 추억과 현재의 고통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시안. 돌이킬 수 없이 갈라져 버린 두 가족의 상황을 견디다 못한 시안은 해원에게 엄마의 상황을 알리고 오래도록 고민하고 시달렸던 어떤 일을 해 달라는 제안을 하는데…….
저자
백온유
출판
창비
출판일
2022.07.25

식물적인 인간을 돌보는 일과 식물을 기르는 일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하지만 텅 빈 눈으로 바라보는 하늘에도 구름이 차오르는지, 엄마가 바라보는 나무에 과연 새가 앉고 바람이 드는지, 그런 것들이 의문이다. 엄마의 세상은 멈춘 지 오래인 듯했으니까.

 

나는 엄마 덕분에 내가 안정적인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늘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 주었다. 나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다. 보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세뇌한다. 

 

엄마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했다. 엄마를 자극하기 위해서라면 가리지 않고 했다. 저주파 전류를 흘려보내는 물리 치료를 삼 년 넘게 했으며, 무언가를 떠오르면 바로 엄마에게 실험을 해 보곤 했다. 나는 소설책을 엄마에게 매일 50페이지씩 읽어 주고 결말은 일부러 말해 주지 않았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니까. 결말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라는 게 남아 있다면 제발 정신을 차리라는 뜻에서였다. 모든 노력과 정성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엄마, 미안. 금방 닦아 줄게."

나는 엄마의 눈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 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 아빠가 썩든 내가 썩든 누구 한 명이 썩기 시작하면 금방 두사람 다 썩을 것이다. 오염된 물질들은 멀쩡한 것까지 금새 전염시키니까.

 

(엄마가 집에 오는 것이)

나는 싫었다. 우리 집이 병원이 되면 어떡해. 아빠방이 병실이 되면 어떡해. 엄마가 우리 집을 장악할 거야. 우리 삶이 장악했듯이. 

 

해원의 슬픔까지 천진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해원이 겪는 이별이나 시험마자 질투하는 내가 싫었다. 문득 더는 속이고 싶지 않아졌다. 무엇을 위해 이제껏 숨겼는지 나조차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감수하는 불편들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엄마의 가슴에 귀를 댔다.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죽은사람과 비슷하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온기가 남아 있다. 영혼까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이 여전히 여기 있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난 왜 이걸 시달린다, 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까. 차라리 나를 다 들켜 버린다면 어떨까. 내 속마음을 알게 되면 엄마는 나를 괘씸하게 생각할까. 

 

엄마는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몸을 벗어 잠시 개켜 놓고 엄마의 영혼 옆에 나란히 누워 보고 싶다. 

"엄마, 거기 있어?"

있을 리가. 나는 이 고요가 너무 익숙하다. 고요도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건 엄마의 빈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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