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동수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22.06.17
01. 들어가며
철학, 오늘날 철학?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한 것이 철학이다." - 헤겔 [법철학] 서문
"탐구는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치러드 로티
우리 시대를 사유하게 하는 통로이자 세상의 실상과 마주해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께 하는 가능성의 공간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에 따르면 오늘날 철학은 불편부당하고 영원한 토대를 마련해서 각자의 역할을 지정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누구든 어떤 학문이든 틀릴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 다른 학문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자리가 되었다. 오늘날 철학은 그러한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다양한 입장들 간의 차이를 번역하는 해석자 역할을 말한다.
철학은 정의 문제 및 취향 문제의 논리와 도덕적 감정 및 미적 경험의 고유 의미에 관여함으로써, 이 논의에서 저 논의로 이행하고 이 전문어에서 저 전문어로 번역하는 독특한 능력을 유지, 보존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철학으로 하여금 타당성 간의 차이들을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갈라진 이성의 계기들 내에서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다언어성이라는 독특한 특징과 만나게 된다. - 하버마스 [진리와 정당화] 중
철학이 가진 최상의 유산 중 하나가 "고정되지 않은 사유라는 무정부주의적 유산"
근대 철학의 원점에는 의심의 체험이 있다. 나는 내가 그동안 갇혀 있던 특정한 사고방식에서 어떻게 풀려날 수 있을까? 의심의 체험은 무엇보다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물려 받은 공동체 자체를 회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갖고 있기에 일반적인 대화의 형식으로 완전히 소통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지점을 넘어서기 위해서 우리의 체험이 이렇다, 우리의 개념이 이렇다는 사실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생산적인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철학책 독서 모임에서 대화란 기존의 이해를 중단시키고 타자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이해와 개념 자체를 재점검하게 한다.
*“요즘 읽을 만한 철학책은 뭘까?”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쓰임. 10년간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다른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음.
오늘의 철학책 세가지 핵심 생각
- 오늘날 우리는 타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타자'에 관한 과거의 논의가 관용과 환대를 맴돌기만 했다면, 오늘날 다양한 타자'들’의 존재는 모든 정치적, 윤리적 문제 설정을 바꾸고 있다. 정체성 정치와 포퓰리즘 정치가 도처에서 유행하고 그에 바탕을 두고 정치적 활동을 할 때 종종 망각되는 것은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공동성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나와 타자들] [관광객의 철학]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는 타자들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철학책.
- 느긋하게 이어가는 대화가 우리의 방법론. 타자들과 함께하는 오늘날 우리 삶은 [낭만주의의 뿌리]에서 설명하는 계종주의와 낭만주의 사이, [모든 것이 빛난다]가 대비하는 허무와 의무 사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제기되는 환대와 배제 사이에서 항상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주어진 정답도, 완벽한 선택도 없기 때문이다. “너무 성급하게 어느 편에 서지 않으면서 이 모순, 이 이중의 담론을 검토 대상으로 삼아 보려는 여유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이러니와 차이를 사전에 배제하기보다는 그와 함께 살아가면서 소통의 여지를 남겨두는 자세가 소중하다.
- 우리 너머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가자.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새롭게 연결된다. 21세기의 철학은 더 이상 혼자서 빠져드는 관조가 아니다. [부분적인 연결들]과 [해러웨이 선언문]의 어색한 대화에서 [숲은 생각한다]에서 배우는 자연과의 상호작용,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법]에서 배우는 온몸으로 후퇴하는 법까지. 고립에서 벗어나 나아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과 씨름하는 오늘의 철학책들은 언제나 하나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고발하기 이전에 나 자신 그리고 우리 자신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형하기 위한 것이다. 출발점은 철학책을 읽는 '행위자 자신의 변형'이다. 이는 무엇보다 철학책을 촉매로 삼아 자신의 사유를 시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철학책이 다른 ㅎ가문 분과의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지식 습득만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1부 타자들과 함께 하는 삶
1장 정체성의 편집자들
"이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관은 없다." - [나와 타자들] 이졸데 카림
타자들은 우리 바깥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너무도 많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와 타자들이 알게 모르게 공존하고 있는 이 사회를 카림은 다원화 사회라 부른다.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동시대적 조건이다. 누구도 이 엄연한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도 없다. 타자들이 없는 과거의 동질 사회로 돌아갈 방법도 없다.
[나와 타자들]은 타자들을 무조건 환대하자거나 타자들과 영원한 평화를 지향하자는 식의 도덕적 담론을 일방적으로 설파하는 윤리 지침서가 아니다. 타자들과의 불가피한 공존 속에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불안정성과 그 정치적 귀결들을 분석하며 우리 모두의 공통적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시사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오늘의 철학책이다. "우리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양성은 기분 좋은 공존이 아니다."
민족 정체성이 침식되고 그 중심성이 해체된다는 건 개인에게 가장 본질적인 소속감을 주면서 다른 모든 정체성을 포괄하는 역할을 했던 '정체성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완전하고 온전한 정체성을 누릴 수 없게 된다. 남는 것은 서로 다른 여러 정체성들 간의 끊임없는 부딪침이다. 결국 정체성의 다원화는 우리가 사회에 속하는 방식을 바꿀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 방식마저도 바꾸어 버린다.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은 언제나 다른 정체성과 나란히 서 있다. 이 상황은 단순히 외적인 만남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바로 이 경험, 즉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언제나 다른 정체성들 사이에 있는 선택이라는 경험이 우리를 바꾸고 있다. 우리와 우리의 정체성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거리가 놓여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거리가 있다. "
이렇듯 사회의 다우원화는 우리 각자 내면의 정체성 인식과 구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다원화가 우리 각자 안에 자리 잡은 다양성을 의미하게 되면서 나의 정체성은 '감소'되기에 이른다. 나는 더 이상 당연하고 완전하고 온전한 나가 아니며, 그 정체성은 항상 의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완전함에서 뭔가 빠진, 감소된 자아)
생활 양식의 다원화, 인간의 다원화, 정체성의 다원화를 되돌릴 길은 없다. 이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상실로도 경험될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한 공격으로도 경험될 수 있다. 그리하여 정체성의 다원화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기존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된다. 다원화의 형태만큼이나 그에 대응하는 수많은 방어 형태 또한 더불어 출현하게 되는 셈이다. "모든 다원화된 삶의 무대들은 이중화된다." 이 명제가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기본 사실이 되었다. (이중화 = 다원화 형태와 다원화에 저항하는 형태가 서로 이중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다원화에 대한 저항은 다양한 영역에서 :
종교 - 종교적 근본주의, 테러리즘
전통 - 전통적인 것의 재활성화
정치 - 여러 형태의 포퓰리즘
도덕 -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좌우파의 비난
다원화는 아무런 저항과 방어 없이 진행되는 일방적인 정책 같은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정체성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 여성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 타자를 혐오하는 사회 문제가 부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젠더 전쟁이나 문화 전쟁을 겪고 있는 걸까? 카림은 아니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진짜 전선은 고정된 정체성 대 다른 고정된 정체성 간의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다원주의 대 반다원주의의 갈등에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들 간의 갈등이란 실은 다원화 사회 속에서 각각의 정체성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다원적 태도와 반다원적 태도 사이의 갈등이란느 것이다.
*다원화의 형태와 다원화에 저항하는 형태가 서로 이중화되어 나타날 때 진짜 전선은 정체성들의 전쟁이 아니라, 다원주의 대 반다원주의에 있다.
현 시대의 개인주의 : 너는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물음을 던진다. 민족 정체성, 젠더 문제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지만 그 어떤 정체성도 기존에 가졌던 확실성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끝없이 성찰하고 의심하는 우연한 주체가 된다. 바로 이것이 정체성의 감소가 뜻하는 바다.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는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다양한 정체성을 선택하고 자신을 고유하고 특이한 '나'로 만들 수 있께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불안감을 키우면서 쉽게 소비자주의에 포섭될 수도 있다.
"다원화 그리고 다원화에 대한 저항과 방어는 서로 반대일 뿐 아니라 '우리'를 만드는 두 가지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또한 '우리'를 만드는 이 두가지 방식을 두고 경쟁하고 갈등하며 적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적대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원화 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참여자들 스스로 배려와 주의의 원칙 그리고 함께라는 원칙을 내면화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름이 동등하게 만날 수 있는, 추상적이지 않은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
예. 퀴어 축제 >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드러낼 기회를 갖게 하는 동시에 그들의 현존을 "노출"함으로써 같은 도시의 시민들이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체성들 간의 만남이 적대와 혐오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정체성을 영원히 감추고 살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런 축제의 공간에 대해 더욱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와 정확히 일치하는 자, 그 시대에 완벽히 속해 있는 자, 자기 시대의 요구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자가 아니다. 외려 시차와 시대착오를 통해 시대에 들러붙음으로써 우리는 동시대인이 될 수 있따. (조르조 아감벤)
*타자들은 단순히 우리에게 동화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 구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들이다. 어쩌면 오늘날 다원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정체성의 편집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새벽 편집자 : 서로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타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나 타자를 혐오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단순하고 성급한 판단에서 벗어나 눈앞에 있는 상대의 영향력에 열려 있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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