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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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지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우리가 끊임없이 육식을 정당화하며 혐오감 없이 동물을 먹는 행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식용 동물'과 '반려 동물'의 구분은 무엇인지, 육식이 자연스러운 행위라면 영아 살해와 살인, 식인 풍습 역시 자연스러운 것인지, 인간이 설정한 먹이사슬의 모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에서 나는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다. 동물도 권리를 가질 수 있고, 나처럼 얼굴이 있고, 숨을 쉬고, 감수성을 지닌,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장식 축산으로 대량 학살되는 동물은 짧은 생애 동안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몸집만 한 철장에 갇혀, 평생을 배설물에 뒤덮여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된다. 비좁은 감옥이 그들 세계의 전부다. '고기'가 되기 위해 계획된 상품으로 태어나 항생제와 오물 따위의 사료가 주입된다. 자연 수명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을 아픔에 몸부림치다 잔혹하게 도살된다. 그들의 신음으로 얼룩진 피는 감쪽같이 삼겹살로, 치킨으로, 꽃등심으로, 가죽으로 둔갑한다.

 

우유 : 낙농업에서 여성 소는 강제 임신, 즉 강간을 통해 출산한다. 평생 출산과 강제 착유를 반복하다 상품성이 떨어지면 도살되어 고기가 된다. 여성 소가 출산한 아기 소는 성별에 따라 고기가 되거나, 새로운 '젖 짜는 기계'가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자발적으로 소의 젖을 입에 대지 않는다.
계란 : 계란은 여성 닭의 '월경 부산물'이다. 본래 닭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무정란을 낳는 동물이었지만, 인위적인 유전자의 호르몬 조작을 거듭하며 지금은 하루에 한 번 알을 낳게 되었다. 기형적으로 가속화된 신체적 변화에 닭들은 알을 낳느라 영양소가 부족해 뼈가 부러지고, 죽음에 쉽게 노출된다. 그렇게 태어난 여성 병아리는 '알 낳는 기계'가 되어 출산을 반복하다 죽으면 치킨이 된다. 재생산권이 없는 남성 병아리는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려 치킨 너겟이 된다. 좁은 철장이 아닌 초원에서 자란 '방목 유정란'도 결국 닭의 원치 않은 죽음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계란은 닭을 죽인다.

죽은 동물을 밥그릇에 두고 평화를 말하거나, 편의 앞에 죽음이 묻히는 행태를 방관하고 싶지 않다.
매일 사라지는 동물을 기억하며 고통 없는 식사를 수행한다. 이 영험한 의식을 통해 나의 영혼은 무한대로 맑아지고 성장한다.
느끼는 존재로서, 나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삶에 다가가고 싶다. 막연한 희망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범선
대한민국은 한 해에 식용으로만 12억 명이 넘는 동물을 죽인다. 이미 전 세계 포유류 중 36프로는 인간, 60프로는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 오직 4프로만이 야생 동물이다.

 

/편지지
우울한 연인을 처음 대하는 범선은 종종 내가 아프면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자신이 무얼 해줄 수 있는지 말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배설하듯 쓴 일기를 내밀었다.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에 잠식되어 가라앉기 시작하면 의식의 경계가 좁아져 어느 한구석에 갇혀버리곤 하지요. 시력이 안 좋아지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눈도 뜨기 힘듭니다. 장기들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심장을 믹서기에 갈아버린 것처럼 얼얼하고 뜨겁고 무거운 돌덩이가 얹혀있는 듯 그저 아픕니다. 낙엽처럼 공중을 부양하다 사라지고 싶습니다. 하필이면 하늘은 지독하게 푸릅니다. 아름다운 날은 고통을 더 선명하게 합니다. 고통의 부재는 되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슬퍼하느라 살지 못 한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저는 혼자 기도랍니다. 내일은 괜찮아지기를.'

 

/범선
한국만 봐서는 인구가 줄고 있지만 전지구적으로는 여전히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환경에 대한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출산이 최선이다. 아무리 채식을 하고, 재활용을 하고, 재생 에너지를 써도, 아기를 낳으면 소용없다.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다. 태어났고, 살고 싶기 때문에 최대한 무해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리는 결혼이 부담스럽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보다 각자 주체적이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상호 의존적이지 않은 동반자 관계를 지향한다. 결혼은 성평등한 사랑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비혼주의를 n포 세대의 안타까운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포기가 아닌 해방이다.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과거와 달리, 평생 스스로에게 집중한다.


현재 결혼이라는 제도는 동성애, 양성애, 다자 연애 등 다양한 사랑을 포용하지 못한다. 오히려 배척한다. 출산을 전제로 남녀 커플을 장려하기 위한 국가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앞세운 통일도 배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한민족이 하나 되는 일은 다문화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흐름과 배치된다. 이제는 훨씬 다채롭고 개방적인 평화를 설계해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나 '한겨레'같은 그릇에 모두를 담기에는 한반도가 이미 너무 역동적이며 세계적이다.

나는 비거니즘을 '살림'이라고 번역한다. '채식주의'가 아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내가 동물을 먹지 않는 이유는 나의 몸을 무덤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공장식 축산의 현실 속에서 평생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은 동물의 사체로 나의 몸을 채우는 것은 끔찍하다.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을도 아름답지 못하다. 나는 죽은 동물과 하나 되고 싶지 않다.

균은 개체와 전체를 나누기 어렵다. 연결되어 있으면 모두 하나로 볼 수 있다. 땅 위에 따로따로 자라난 버섯들도 사실 땅 밑에서는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버섯 그물망을 통하여 숲 속의 나무들은 서로 물, 질소, 탄소들을 공유한다. 인간은 절대 홀로, 독립되고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그물망의 일부다. 인간이 개인이라는 환상 속에 살다 보면 전체로부터 소외된다. 인간만을 주체로 보고 자연을 대상화하면 생명을 파괴한다. 오늘날 기후생태위기는 바로 이러한 인간중심적, 개인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인터넷과 사회 관계망 서비스의 시대, 인간은 이미 그물망 속에 살고 있다. 문제는 사이버 그물망에 오래 접속할수록 생명의 그물망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직접 농사를 지어먹지 않고 어플로 배달시켜 먹기 때문에 밥상 위에 있는 음식이 생명으로 보이지 않는다. 철저히 나와 분리된 사물로밖에 안 보인다. 인간은 새명으로부터 소외되고 생명은 인간으로부터 대상화된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질문을 던진다. 동물의 고통 때문이고 싶지 않아서 채식을 한다. 기후위기에 기여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이면 지역 농산물을 구매한다. 토양을 파괴하고 싶지 않아서 유기 농산물, 무농약 농산물을 택한다. 우리 세 식구의 살림이 다른 생명의 죽임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든 집안 살림과 나라 살림이 생명 살림이자 지구 살림이기를 기원한다.

 

 


'비혼주의', '비거니즘'을 함께 공유하는 편지지와 전범선 커플의 먹고 사는 에세이. 편지지 님의 레시피도 챕터 별로 수록되어 있다. 비주얼이 어마해서 요리하기 매우 어려워보여 선뜻 '이건 해봐야지' 생각이 들진 않았던 것 같다. '아 이렇게도 멋있게 차려 먹을 수 있구나' 정도. 😂

 

배타적인 개인주의는 더 잘 살아야한다는 사회적 합의에서의 먹고사니즘 또는 자의식 과잉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도 이렇게나 힘든데 동물까지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매일 죽임을 당하는 동물만큼 힘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한 줌의 여유가 주어지거나 누군가의 따뜻한 호의로 내가 살아난 경험이 있다면 기꺼이 무해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 않을까. '애를 안 낳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친환경 행동이야.' 라고 하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사회는 환경파괴적으로 성장을 이끌어왔으나 결국 인구절벽 앞에서 무너지고 있으며 버티고 있는 젊은 세대는 비출산이라는 친환경 라이프를 살아가고 있는 모순.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그리고 채식을 함께 외치면 좋겠다. 사랑! 채식!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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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ohmy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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