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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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르지만 - 그래서 이렇게 말하면 너무 성급하지만 - 지금까지는 좋은 게 나쁜 쪽이 나쁜 것보다 위네요. 이렇게 찬란한 아침에 우울해지기는 어렵잖아요. 처음 맞는 봄날이죠 - 연중 최고의 날이에요. 누릴 수 있을 때 누리자고요, 몰리.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절대 모르는 거니까. 

 

바움가트너는 대화가 끝날 때쯤 달래는 말로 아이에게서 웃음 비슷한 것을 끌어낼 수 있고, 마침내 전화를 끊고 나자 웃음이라 할 수도 없는 아주 작은 웃음이 그에게 계속 남아 있다. 그게 오늘 하루 동안 그가 성취해 낼 수 있는 단연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어쩌면 자신, 바움가트너가 냄비에 손을 덴 바로 그 순간 플로레스 씨도 손가락이 잘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차장온다. 불행의 원인은 각자 자기 자신이고, 한 사람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불행보다 훨씬 크다 해도, 그래도, 각각의 경우 - .

 

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말의 흐름은 무슨 수단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짜증이 점점 심해지지만, 이 선량한 멍청이에게 약간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부서진 꿈과 마시지 못한 커피들(이루지 못한 일들)을 둘러싸고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

/ 잠시 통증을 잊게 해주는 암울하면서도 반가운 기분 전환 거리 

 

이 젊은 남자가 가진 선의의 힘이 그를 놀리고 싶은 모든 충동을 압도하는 바람에  

 

그는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속으로 말한다.

 

똥 대가리와 이기적인 짐승들만 가득한 세상에 자비의 천사 같은 이런 선량하고 순진한 사람이 나타나다니. 

 

그녀는 9월의 오후 속으로 나갔고 소심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얼간이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가 이 볼품없는  알루미늄 냄비를 샀는데, 고작 10센트 주고 산 이 냄비는 그 뒤로 오랜 세월 그와 함께 있다가 마침내 오늘 아침 소멸하고 말았다. 

 

둘은 결혼했으며 그게 그의 진정한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아홉 해 전 여름 그녀가 케이프 코드의 파도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가 사나운 괴물 같은 파도와 마주쳐 등이 부러져 죽기까지 이어진 하나뿐 인생. 

 

환상 사지 증후군 / 그것이 인간의 고난과 상실의 은유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에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10년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래 바움가트너가 쉼 없이 찾고 있던 비유, 2008년 8월의 그 바람 많고 더운 오후 이래 그에게 일어난 일을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유사물이다. 그날 오후 신들은 아직 젊은 자아가 왕성한 힘을 내뿜고 있던 아내를 그에게서 탈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의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갔다. 네 개 전부, 팔 둘과 다리 두개가 모두 동시에. 머리와 심장이 그 습격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저 삐딱한 마음으로 히죽거리기나 하는 신들이 그에게 그녀 없이 계속 살아가도 좋다는 의아스러운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래도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는 책을 들고 흥미를 끄는 구절이 나오면 표시하려고 오른손에 연필을 든 채 소파에 웅크리고 있다. 

 

나는 애나를 막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럴 권리가 없죠. 

삶은 위험해요. 언제라도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죠. 모두가 그걸 알아요. - 모른다면, 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완전히 살아 있는 게 아니죠. 

지금은 어떤 느낌이세요, 지금 이 순간은?

형편없습니다, 비참해요. 망치로 두들겨 맞아 산산조각이 난 상태죠. 

하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말하자면, 솔직히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고, 왜 하필이면 나냐, 하고 하늘을 향해 신음을 토하지 않아요. 왜 내가 아니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꼬,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애틋한 마음으로 열정적 고독이라고 기억하는 상태에 빠져들어 수영을 했다.

 

타자기 소리 : 약하게 죽인 폭죽이 터지는 듯한 그 소리를 사랑하여 귀를 기울였다.

 

그런 식으로 첫 여설 달이 흘러갔다. 바움가트너가 나중에 사라짐 또는 애도하다 미쳐 버린 남자라고 언급하게 되는 시간의 틈. 반년 동안 그 자신도 대체로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소년 시절부터 알고 들어가 살았던 존재와는 다른 존재였다. 그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비합리적인 충동에 휘둘리는 그 임시 구역에서 괴상하고 어정쩡한 일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 열심히 하면서 바쁘게 그날들을 흔들흔들 통과해 갔다.  

 

그는 발을 바닥에 딱 붙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위태로운 내적 공간에 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두 손에 감당할 수 없이 넘쳐나는 시간을 들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애나의 시집을 펴낸 이유) 그가 인생 거의 3분의 2를 함게 살았던 그 빠릿빠릿하고 활기가 끓어오르는 시인은 그녀의 남편이었던 늙어 가는 뼈 자루 말고도 다른 어떤 사람, 또는 수많은 어떤 이들을 독자로 거느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뒤, 바움가트너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처음 그 몇달 이후로 정말이지 자신에게 변한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물론 달라진 척했고, 일단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자기 발로 서고 다시 걷기 시작하자, 다시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녀를 밀어내는 동시에 그녀에게 매달리고.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고통을 두러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몸에 붙어 있었고,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그녀가 확실하게 아는 것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이룩했던 깊은 연결은 죽어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창 없던 방에 창이 생겼다면, 누가 알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창살도 사라져 마침내 바깥 공기 속으로 기어나갈 수 있는 날이 올지.

그가 그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는,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그녀 생각ㅇ르 하고 있는 그를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세계를 그가 떠올렸따면 거기에 어떤 진실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껬는가? 아마도 과학적 진실은 아니겠지만, 입증 가능한 진실은 아니겠지만, 감정적 진실은 있을 것인데, 결국 중요한 건 오직 그겄분이다 - 이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런 느낌을 어떻게 느끼는지. / 바움가트너는 마침내 종교를 발견했다. 

 

바움가트너는 움직임에서 얻을 수 있는, 생기를 북돋는 고유 수용성 쾌감을 재발견한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게 되자 - 자신의 대한 믿음도 커진다. 속도가 과거보다 느려진 게 무슨 상관이랴. 미래를 태하는 태도도 대담해졌다. 즉시 미래를 향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 그러지 않으면, 어차피 그는 일흔 살이고,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치매/

종말이 왔을 때, 적어도 자기 글에 쓸 문장을 마지막으로 애써 끄집어내다 심장이 멎는 위엄을 부여받기를. 세상에 지배하는 권력에 굶주른 광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큰소리로 좆 까라고 떠들다 멎으면 더 좋고. 아니면 사랑하는 여자와 심야 밀회를 하러 거리를 걸어가던 도중에 영혼을 하늘로 날려 보내면 더욱더 좋고. 

 

중요한 모든 일을 똑같은 눈으로 보고 갈라설 의사가 전혀 없는, 서로에게 푹 빠진 두 외톨이.

 

(아이가 없는 둘) 바움가트너에게는 애나와 함께 산 그 모든 세월 내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 것 이상이었다. 지금도, 자식들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면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충분한 것 이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하다. 

 

그녀가 책의 세계로 이주하여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해가 지려몀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하지만 하늘은 이미 잠식해 오는 땅거미와 어둠의 희미한 첫 조짐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제 구름 가장자리를 따라 분홍색과 주황색이 슬쩍슬쩍 보이기 시작하고, 멀리서 제비 떼가 급강하한다. 땀과 끈적한 피부의 시간들을 보상해 주는 작은 시각적 경이들.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다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우화  

17살이 되었을 때 법원 재판관은 "문장을 만드는 인생이라고 부르는 형"을 선고했다. 

내 감방 문은 한 번도 잠긴 적이 없다. 나는 언제라도 내가 여기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걸 의심한 적이 없다. 실제로 그러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나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냥 남아 있는 쪽을 택했다. 

마치 시계가 기록하는 한 시간이 1분에 불과한 것처럼. 50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나니 내 인생이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늙었지만, 날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나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젊게 느껴진다. 따라서 손에 연필을 쥘 수 있고 눈앞의 문장을 볼 수만 있으면 여기 도착한 아침 이후 해온 일과를 똑같이 할 생각이다. 마침내 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일어나 떠나면 그뿐이다. 그때 너무 늙어 걸을 수 없다면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 줄게 분명하다. 

 

날씨의 유혹에 굴복하여

 

이런 날이라면, 그는 속으로 말한다. 해가 세상을 밝게 비추는 일을 하도록 놓아두고 보호되지 않는 맨눈으로 그 모든 것을 전부 받아들이는 게 낫다.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허공을 보는데 새 한마리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저렇게 하얀 구름이라니, 그가 속으로 말한다. 저렇게 푸른, 그가 몇 년간 본 가장 푸른 하늘에 붙어 있는 저토록 순수하고 흰 구름. 놀랍다, 그는 생각한다. 지구에는 불이 붙었고, 세상은 타오르고 있는데,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와 같은 날이 있으니 즐길 수 잇을 때 이런 날을 즐기는 게 낫다. 이게 그가 보게 될 마지막 좋은 날일지 누가 알겠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는 생각한다, 전혀 없다. 

 

바움가트너는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과 녹색 잔디를 계속 보는 대신 눈을 감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얼굴을 하늘로 들어 올린 채 자신에게 긴장을 풀라고 말한다. 세상은 그의 눈커풀 위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이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기억하라고 말한다. 

 

자신도 너무 어렸고 스스로의 삶에 겹겹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 연약하고 격정적인 작은 피조물 / 현실의 삶이라는 도랑에 빠지는 바람에.

 

뭐 하러 죽은 말에게 돌아가서 때려 대고 있는가 (헛수고를 한다는 뜻), 손 갈퀴와 장난감 삽을 들고 숲속을 기어다니며 아주 오래전 과거의 작은 보물을 파내야 할 때에. 

 

1968년, 피와 불이 넘실대던 묵시록적인 해, 미국의 집단적 신경 쇠약의 해 늦여름이었고.

 

여전히 그 풍경이 선하고, 마치 그런 것들이 손에 만져지는 듯하다. - 사라지지 않는, 그러나 오래전에 사라진 과거에서 떠내려온 지워지지 않는 부유물. 

 

바움가트너가 태어난 후 그의 아빠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영화에서 딱 한 장면에 나온 여배우였는데, 나중에 아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장면이 잘려 버린 거야. 그걸 뭐라고 표현하더라? 

'편집실 바닥에 쓰려져 죽었다.' 

 

스타니슬라프의 이리들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을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자기를 모든 사람으로 가장하고 있는 누구일 수도 있는 사람

 

바움가트너는 대체로 안도하고, 대체로 지나친 자기혐오에는 빠져들지 않는다. 물론 이 책 자체는 좆같이 미친 물건이라 이제는 자기가 어떻게 그런 걸 쓰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책은 태어나기 시작했다, 바움가트너의 생각으로는. 그러니까, 인간 삶이란 외로움과 잠재적 죽음이라는 고속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통제 불가능한 차라는 독한 비전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들의 전당>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사람

 

그는 차 그 자체만이 아니라 인간 자아의 표상으로서의 차, 나아가 어두운 밤을 뚫고 혼자서 저돌적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수백만 명이 모는 다른 차 수백만 대와 함께 주간 고속도로가 얽힌 방대한 망을 따라 돌아다니는 차들에 사로잡혀 있었따.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의 위엄 있는 웅변.

 

그의 인생의 북엔드.... 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애나의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이 건너다보였던 일은 떠오른다.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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