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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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최고작이자 전 세계적인 메가셀러 『속죄』를 새롭게 선보인다. 국내에서는 2003년 처음 소개된 이후 쇄를 거듭하며 꾸준히 사랑받았고, 출간 20년 만에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롭게 펴내며 보다 세심하게 다듬어진 번역을 통해 이언 매큐언의 작품세계를 더욱 완성도 높은 판본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이야기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영국 상류층이 마지막으로 좋은 시절을 보낸 1935년, 교외의 저택에서 시작된다. 제1부에서 브라이어니 탤리스는 작가를 꿈꾸는 열세 살의 소녀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질서정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브라이어니의 언니 세실리아는 뭔지 모를 답답함과 자립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세실리아의 소꿉친구이자 탤리스가家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 터너가 있다. 계급적 거리감, 그리고 둘 사이에 막 싹트기 시작한 성적 긴장감 때문에 세실리아를 멀리해온 로비와 이를 눈치채고 표현하기 힘든 울분을 느끼는 세실리아가 어느 뜨거운 여름 오후 정원에서 마주친다. 두 사람은 꽃병을 사이에 두고 공연한 실랑이를 벌이고, 결국 깨져버린 꽃병 조각이 분수대 물속에 빠지자 세실리아는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여봐란듯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저택의 위층 창가에서 브라이어니가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그날 저녁 저택에서는 또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탤리스가에 와 있던 친척 쌍둥이 형제가 실종되고, 손님으로 방문한 폴 마셜까지 동원되어 아이들을 찾으러 나섰다가 쌍둥이의 누나 롤라가 강간을 당한 것이다. 몇 시간 전 로비와 세실리아 사이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목격하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인 브라이어니는 로비를 강간범으로 지목하고, 의대에 진학하려던 총명한 청년 로비와 그를 향한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세실리아의 운명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저자
이언 매큐언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3.02.28

 

(롤라가 브라이어니의 역할을 맡겠다고 했을 때) 

"좋다고 말해줘. 이건 지난 몇 달 동안 내게 일어난 일들 중에 유일하게 기쁜 일이 될 거야."

좋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브라이어니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순간 자기파멸적 동의로 인한 불쾌한 흥분이 온몸으로 퍼지고, 이윽고 몸 바깥으로 빠져나와 풍선처럼 부풀어 고동치며 방안을 어둑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어서 방을 빠져나가 혼자가 되고 싶었다. 침대에 얼굴을 묻고 그 끔찍했던 순간의 고통을 되씹어보고 싶었고, 이 파국에 이르기까지의 대화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분석해보고도 싶었다. 눈을 감고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포기해 버렸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호기심은 또 다른 호기심을 낳았다.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그녀처럼 살아 있는 것일까? / 만일 그렇다면, 이십억 명의 사람들이 이십억 개의 목소리와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는 이십억 개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었다. 그런 생각에서는 누구도 특별할 수 없었다. 모두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무도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하찮음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었다. 반대로 만일 그렇지 않다면, 브라이어니는 겉으로는 대단히 지적이고 쾌적하지만 속으로는 그녀처럼 명민하고 은밀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는 기계들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것은 불길하고 외로운 일일 뿐 아니라 실제로 가능성도 희박했다. 질서정연함을 좋아하는 그녀의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그녀처럼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녀가 이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을 불행에 빠트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도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한 몰이해가 불행을 불렀다. 그리고 오직 소설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두가 똑같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에 필요한 유일한 교훈이었다. 

 

감미로운 공상 뒤에는 현실 복귀라는 쓰라린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공상을 통해 피해왔던 현실을, 더 나빠진 것만 같은 현실을 다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세부 하나하나까지 그럴듯하게 보이던 공상의 순간들은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는 찰나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다. 

 

(사라진 동생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롤라를 보며)  

브라이어니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결국 사람은 남들과 비교해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때때로 남들이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혼자 앉아서 생각 중인 에밀리)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에밀리의 어린 자아는 그녀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얼마나 빨리 끝나버리는가. 압도되지도 않았고 허무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빨리 끝나는 것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진부한 생각이 든다고 해서 딱히 풀이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달려온 세상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이며, 원하는 일이 일어나게 해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 그녀는 세상이 자신에게 준 것을 글로 묘사할 것이다. 글쓰기는 일종의 비상 아닐까? 활공과 욕망과 상상의 현실화 작업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아니 말이나 개 같은 동물에게 전적인 책임감을 갖는 것이 글쓰기라는 거칠고 힘든 정신적 여정과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 누군가를 보호하고 걱정하는 것,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정신적인 자유와는 거리가 먼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죄책감은 자학의 도구를 끊임없이 정련했고, 시간이 가면서 떠오르는 세밀한 기억의 구슬들을 하나하나 실에 꿰어 평생 동안 돌리면서 기도해야 할 묵주를 만들어놓았다. 

 

1935년에 브라이어니는 어린아이였다. 그래, 그 애는 그저 어린애에 불과했어. 그러나 모든 어린애가 거짓말로 한 인간을 감옥에 보내지는 않는다. 모든 어린애가 그렇게 고의적이고 악의적이지는 않고, 시간이 지나도 그렇게 일관적이지는 않으며,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단 한 번도 의심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지난 59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에게도 소설가에게도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며,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다. 오직 속죄를 위한 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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