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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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당신을 향해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리움도 애틋함도 없이. 당신을 되살린 후, 다시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딛고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당신’을 마주하는 작품 〈다른 딸〉이 출간되었다. 작가가 1984년 르노드 상을 받았던 〈남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한 여자〉에서 어머니의 인생을 기록하였다면, 〈다른 딸〉이 천착하는 대상은 ‘당신’, 아니 에르노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죽은 언니 지네트이다. Nil 출판사의 편지 시리즈 기획(‘Les Affranchis’)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 〈다른 딸〉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편지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하여 시작되는 이 편지는 아니 에르노 특유의 아름다운 칼날 같은 문체를 통해 우아한 유속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나의 흔적에 얹힌’ 당신을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으로 죽은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촉발된 어린아이의 불안과 혼란, 부재와 존재의 탐구, 그리고 마침내 ‘당신’에 대한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온전한 ‘나’로 향하고자 하는 여정이 모두 여기, 이 물결에 스며있다.
저자
아니 에르노
출판
1984BOOKS
출판일
2021.07.02

아니 에느로는 1950년 10살에 부모가 자신에게 숨겨왔으며 그들이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바로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부모에게는 여섯 살에 디프테리아로 숨진 지네트라는 딸이 있었다는 것. 아니 에르노는 71세에 '다른 딸, 지네트'에게 편지를 쓰며 이 오랜 비밀을 털어놓는다.

 

내겐 어린 시절의 (나쁜 일들은 절대 아니고) 비밀이 여럿 있는데 그로 인해 어떠한 감정(주로 수치심, 죄책감)을 처음 느껴서인지 종종 그 '비밀'들의 시간들로 회귀하며 이중의 형태로 살아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헤어나오기 위해 나는 "광호야!" (애인의 이름) 부르며 그는 언제나 "응!"이라고 답하며 나는 그 뒤로 어떠한 말을 하진 않는다. 반면 아니 에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우아하게 헤어 나온다. 

 

당신은 덫입니다. 숨 막히게 하는 무언가를 가진 채, 역겨운 슬픔의 냄새를 풍기며 당신에 대한 가상의 친밀감을 만들어내요. 나를 비난하려 가까이 다가오죠.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라고 믿게 하며, 당신의 죽음을 우위로 두어 내 존재 전부를 깎아내리려 합니다. 내가 그렇게 여기는 까닭은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엄밀하게 저울질하여 만든 나에 대한 인식을 당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완성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에요. 모든 기쁨의 순간이 슬픔에서 나왔고 모든 성공은 알지 못하는 형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데서 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나는 당신이 죽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죽은 것은 내가 글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이 거기 있어요 보이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 그들의 고통으로. 

 

1992년(52세)의 여름에 쓴 일기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어린이 - 그게 글쓰기의 기원일까? - 나는 내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존재로 사는 복제인간이라고 늘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살아 있찌 않으며, 이 삶은 또 다른 삶을 허구로 만들어 쓴 '글쓰기'라는 것을. 존재의 부재 혹은 이 가상의 존재를 파고들어야 한다. 

 

그들은 차례차례 땅에 묻히면서, 1938년(지네트가 죽은 해) 봄에 잃어버린 모든 것, 당신에 대해 살아 있는 기억을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당신의 첫걸음, 즐겁게 놀던 당신 모습, 당신의 두려움과 아이들에 대한 당신의 질시, 당신이 학교에 입학하던 날. 당신의 죽음은 이 모든 기억을 견딜 수 없는 회한으로 바꾸어놓았지요. 이와는 반대로 그들은 내게 진절머리를 냈어요. 나는 수많은 일화로 채워진 유년기를 보냈지만, 당신의 유년에 비하면 텅 비어 있는 셈이에요.

 

이 편지를 시작하기 전에는 무심코 당신을 떠올려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하짐나 지금은 평온하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마치 꿈을 꾸듯 이끼만 잔뜩 돋은 인적 없는 습지에서 걸음을 내딛는 듯하고, 단어들의 틈새를 헤치고 나아가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 찬 공간에 넘어가야 할 것만 같아요. 내겐 당신을 위한 언어도, 당신에게 말해야 할 언어도 없으며,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비존재 상태로 있는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정과 정서의 언어 바깥에 있는 당신은 비언어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여섯 살에 머물러 있었고, 나는 세상으로 점점 더 나아갔지요. '계속 가고자 하는 드센 갈망'으로요. - 이 표현의 의미는 스무 살에 엘뤼아르의 시에서 발견했어요. - 당신에게 온 것은 죽음뿐이었습니다. 

 

당신의 생명에서 영원을 얻은 내 생의 광활함이 나를 뒤덮습니다. 내 뒤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이 있어요. 보고, 듣고, 배우고, 잊어버리는 것들, 동고동락하는 남자와 여자들, 거리들, 저녁과 아침들. 과잉의 이미지가 넘칠 정도로 내게 쏟아집니다. 

 

나는 내가 있었던 그곳에 당신을 데려다 놓을 수 없고, 내 존재를 당신의 존재로 바꿀 수 없습니다. 죽음이 있고, 삶이 있지요. 당신 또는 나. 나는 존재하기 위해 당신을 부인해야만 했어요. 2003년에 (63세) 일기장에 적혀 있던 이야기의 장면을 다시 보았습니다. 나는 그녀처럼 '착하지'않다. 나는 쫒겨났다. 그러니 이제는 사랑 속에서 살 수 없고, 단지 고독과 지성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아마 나는 당신의 죽음이 내게 준 삶을,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어 당신에게 돌려주며 가상의 빚을 털어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로부터 떠나기 위해 당신을 되살리고 다시 죽게 한 걸 수도 있고요. 당신에게 벗어나려고. 죽은 자들의 오래 지속되는 삶에 대향해 투쟁하려고.

 

 

언급된 책, 음악 : 

 

모파상 - 인생

보들레르 - 악의 꽃

 

클로델의 문장을 붙여놓았던 아니 에르노 : 

그렇다. 나는 믿는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내 안에는 세상의 묵과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읽고 싶은 책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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