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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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캐스팅으로 짧게 아이돌 생활을 했던 주인공 나영. 퀴즈쇼에 나가 자몽이 영어로 뭐죠? 질문에 jamong이라 답해 웃음거리가 된 후 아이돌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자몽에 대한 온 세상 논문을 다 읽은 후 논문을 연달아 익명으로 발표하여 히든 천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부모님 카페에서 일하면서 조용히 살아가던 나영은 갑자기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외계인' 연구를 함께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태어나 처음으로 외계인 같은 타인들과 함께 외계인을 연구하며 관계를 쌓기 시작한다. 

 

소설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외계인은 뒷전이다. 오히려 '나영'이 외계인처럼 그려지며 개별성, 타자성, 이타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다름을 이렇게나 싫어할까. 그건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 저해되기 때문이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더 위험한 상황일 테고. 혐오를 위한 혐오도, '보통'에 대한 추상적인 믿음도, '다름'을 특이함으로 취급하는 태도도 모두 싫어한다고 믿은 내게 이 책은 '과연?' 질문을 던지며 내 머리를 휘젓고 다녔다. 내가 가진 생각들을 더 치열하게 검열하자. 나도 외계인, 타자도 외계인. 서로 충돌할지언정 더 성실하게 대화와 관계에 임하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나가면서 내 세상에서 우리의 세상이 주 대화가 되도록. 그 누구도 우리의 세상에서 배제되지 않게. 누군가 "저 이해 안되죠?" 라고 묻는다면 웃으면서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이해는 제 몫이죠."라고 말해줄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제2회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 어느 날 광화문 광장에 외계인을 태운 우주선이 불시착했다. 외계인을 연구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총출동하지만 외계인은 침묵할 뿐이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자몽을 닮았다는 것뿐이다. 전직 아이돌 출신이자 자몽 연구가인 나영이 광화문 광장으로 소환되지만, 막상 외계인 연구를 지휘하는 건 과학자도 정치인도 아니라 권위와 폭력을 앞세운 군인들이고, 이에 나영은 친구들과 힘을 합쳐 군인들과 맞서는데…. 인류를 되돌아보게 하는 냉소적이지만 온기를 잃지 않는 시선 _김초엽, 소설가 SF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팝콘을 튀겨 옆에 두고 읽어야 할 듯한 소설 _이다혜, 〈씨네21〉 기자 시종 흥미롭고 유쾌하다. _민규동, 영화감독
저자
김원우
출판
아작
출판일
2022.12.25

 

 

책 속 나영 그리고 *천주교 신부 상윤은 신의 존재에 대해 티격태격 논쟁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책 속이지만 참 부러웠다. p.198-200 중 대화를 소개한다. 

 

저로서는 그 믿음이 어디서 솟아나는 건지 모르겠어요. 오래된 책 한 권이 전부잖아요. 거기에 기대서 보이지도 만날 수도 없는 신의 존재를 믿기엔 그 기반이 너무 허약한 거 아닌가요? 

- 전자를 맨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없듯이 신을 볼 수 없다는 게 그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어요.

신을 봤다는 게 거짓이라는 걸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전자를 봤다는 게 거짓이라는 건 증명할 수 있죠.

- 반증주의로군요. 꽤 효과적인 방법론이지만 어디에나 들어맞는 건 아니죠.

그것봐요. 신부님이 종교를 과학에 견주어 얘기하시지만 제가 보기에 그 둘은 너무 달라요. 종교는 탐구에 관심이 없어요. 다른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척할 뿐이죠. 누구 말이 맞는지 따져보지도 않아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느니, 예수님 말씀이 진리라느니 하지만 정작 진리에는 관심이 없잖아요. 그냥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각자 갈 길을 갈 뿐이에요. 과학은 무지의 영역에 불을 밝혀요. 그 너머에서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면, '와! 어디 한번 알아볼까?' 하고 달려들고요. 종교는 무지의 영역에 불을 밝히는 대신 불을 지르죠. 그리고 선언해요. 저긴 불지옥이다. 

- (...)반면 무지를 인정하고 진리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교회 안에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 시간은 중요한 변수입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다음에. 나중에. 그 소리는 지겨워요. (...)종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그 사람들이 교단의 해체를 요구한 적도 없고 종교 행사를 훼방 놓은 적도 없잖아요. 심지어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그냥 신경 좀 끄라는 게 전부잖아요. 물론 종교가 변한다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는 않을 거예요. 종교는 일종의 핑계에 불과한 거죠. 동성애와 임신중단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종교가 사라진다고 해서 혐오를 멈추겠어요? 혐오에 대한 근거를 떠올릴 머리도 없고 애초에 근거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다 신에게 떠넘기는 거죠. '쟤가 그랬어요.'라면서." 

 

나영이 어린이 수빈에게 존대말을 쓰며 대화에 진심을 다해 임하는 것도 너무 좋았고. 나영이 다른 연구진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상황에서 동욱이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니 무시하라"라며 위로한다. 이를 들은 수빈 그리고 나영의 대화 p.214 :

- 왜 마녀를 사낭해요? 언니는 마녀가 아니잖아요. 

아무도 대답이 없자 수빈이 국어사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녀 항목을 찾아 읽었다.

- 마녀, 유럽 등지의 민간 전설에 나오는 요녀. 주문과 마술을 써서 사람에게 불행이나 해악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악마처럼 성질이 악한 여자.  (...)

수빈은 만약 마법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 마법을 배울 거예요. 

수빈의 대답에 나영이 웃었다.

그래요. 그게 과학이에요. 모르는 건 알아보려는 자세요. 마녀라고 부르는 건 그 반대예요. 자기 이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공격해서 없애버리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아는 것, 내가 인정한 것, 내가 허락하는 것만 해야 해.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내 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마녀야. 여기서 나는 남성이고 자본이고 국가고 교회예요. 내 마음에 안 들면 산채로 불에 태워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이게 마녀사냥이고요.

- 자기 기준에 안맞는 여자를 마녀라고 부르면서 괴롭히는 거네요.

맞아요. 마녀의 정확한 뜻은 이거예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 또는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여자.

- 그럼 언니는 마녀예요? 

그래요 저는 마녀예요.

- 사전이 엉터리예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나영은 점차 '외계인'을 함께 연구하는 동료들이 만든 kfc (김나영 프렌드 메이킹 클럽) 모임에서 사랑, 희망, 우정을 무럭무럭 키워나간다. 그리고 이제 kfc 친구들은 연구 목적으로 가둬둔 외계인의 탈출을 도모하며 나영과 상윤은 대화한다.

 

모르겠어요. 눈앞에 어떤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선거 때 자기 집값, 땅값을 올려준다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꼴 보기 싫지만 그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외계인을 붙자고 있는 게 대체 무슨 이득인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지. 이익이 있다 쳐도 그렇지. 땅값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요. 

- 가끔 세상을 망치는 원동력이 어떤 배타적인 욕망이 아니라, 그러니까 그런 능동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게으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건 나중에 가서 변명이 될 뿐이에요. 나는 몰랐다, 뭐 그런 거요. 사람들에게는 치졸한 욕망이 있어요. 돈, 명예, 섹스, 재미 그걸 인정해야 해요. 인정하고 다스려야죠. 

- 한때 반지성주의가 판치던 때가 있었죠. 아니, 지금도 그런가요? 아무튼 아시모프가 그랬죠. 민주주의가 '나의 무지는 당신의 지식과 다름없다.'를 뜻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반지성주의를 자라게 한다고요. 그 결과가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생각의 게이름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어느 정도는 세상을 지금처럼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고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치열하게 생각했다면, 그랬다면 옳고 그름도 지금보다는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테고. 

 

이런 대화들이 가득찬 Kfc모임에서 치유되는 나영의 이야기 :

난 내 상처를 과소평가하지 않아요. 다 지난 일이라거나 지나 보니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해요. 더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해 안 가죠?

-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이해는 저희의 몫이죠. 

 

 


 

문윤성 SF 문학상이란?

1965년 대한민국 최초의 SF 장편소설 완전사회를 발표한 문윤성 작가를 기념하며 제정된 SF 문학상이다. 완전사회를 복간한 아작 출판사에서 주관하며 전자신문에서 주최한다.

 

  • 1회 대상 최의택 <지금, 여기, 우리, 에코> - 출판명 <슈뢰딩거의 아이들>
  • 2회 장편 대상 김원우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 2회 중단편 대상 <내 뒤편의 북소리>

비고 : 아작 출판사는 장강명 작가님을 포함한 여러 작가님들께 사기를 친 곳이다. 그래도 수면 위로 올라와 이제 제대로 정산하고 있겠지?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책이 너무 좋아서 다른 수상작을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다.) 

 


데이지
오마이라이프 인스타그램 | 북스타그램 | 유튜브
daisy@ohmy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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