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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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2살. 봄이어서 그럴까, 미래의 내가 '지금은 새롭게 살아야 할 때야'라고 계속 외치는 것 같다. 미래의 수많은 나 - 에게 빚지고 있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나를 들여다보기 무서워서 책으로 도피한다. 한 권 정도는 내가 정신 차릴 정도의 쓴소리를 해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읽게 된 무중력의 사랑. 33살의 저자는 씩씩하게 위로를 건넨 후 무중력의 세계로 건너갔다. 그렇지만 그가 건넨 문장들의 중력은 나를 영원토록 구원해 줄 것이다. 작가가 외웠던 주문을 나도 조용히 외워본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일신우일신. 

 

 

 

좋았던 문장 

 

첫  직장과 나는 이렇게 이별을 한다. 스물두 살 무렵 첫사랑과 헤어질 때처럼. 다만 그때보다 몸과 마음이 지쳤고, 헤어짐의 과정은 지난했다. 내일 사표를 쓰려 했건만 하루라도 더 견딜 수 없어서 오늘 새벽에 일어나 썼다. 그나마 다행은 웃으며 나를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헤아려보니 오늘로서 4년 3개월 하고 일주일. 덕분에 나는 속보도 받아쓰기도 웬만큼 하게 되었고, 평생 관심 있던 정치도 빨리 알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경제학에 관심 갖는 글쟁이가 되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을 두루 만나게 되었다. 어깨에 지워진 책임은 무거웠으나, 버텨냈더니 손을 내미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저 내 이름, 내 기사를 믿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재미에 살았다. 하지만 이런 재미도 잠시 뒤로 하련다.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고, 그저 지금은 다만 책 읽고 음악 듣는 한량의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부족한 나를 이만큼 키워준 모든 사람들께 감사드린다. 당신의 질책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관심과 당신의 스트레스가 내 영혼의 깊이를 만들어주었으니. 

 

고통을 먹어버리자. 이 낙방의 기억을 먹어버리면, 조금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조금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죽지 말자. 지금은 그저 근육을 만들 시기. 생각의 근육을. 이 고통을 먹어버리자. 먹어버리면 철학이 생길 테니. 자신만의 답을 찾을 테니. 떨어져도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 스스로의 힘으로 잘 놀고 잘 살자, 행복하게. 이 시간들이 당신의 자양분이 될 테니. 무작정 즐겁게 놀아서, 그래서 나중에도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 당신의 삶을 구원할 테니.

 

가슴의 밑동이 흔들릴 때, 혹은 울컥하고 짜증이 날 때, 이유 없이 화가 났을 때, 내가 숨기고 싶어 했던 어떤 '없음'의 순간들이 드러날 때였다. 때론 화가 났고, 때론 고통스러웠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이 어느 날 내게로 왔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그동안 나는 내게 없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것을 채워줄 사람을 찾아왔다. 자기의 약함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걸 보완해 줄 사람을 찾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끝내 관계는 언제나 파국을 맞았던 것이다. 

 

결국 나의 20대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의 '없음'을 감추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20대의 끝은 허무했다. 서른 살 이후에 나는 여전히 허덕였다. '투병.' 병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20대는 그래서 피곤했다. 특히 괴물을 만날 때면. 

 

나를 구원하려 들지 말아요, 나는 내가 구원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잘 살 거예요. 잘 살고 있어요. 나는 악하지 않아요. 그저 유전자가 나쁠 뿐. 내 우주는 흑백이 아니라 총천연색일 뿐. 그 속도는 다소 빠르고, 짜임새는 성기고 거칠 뿐. 

 

하루 종일 한숨을 내리 쉬었다. 나는 왜 지금 여기 있는지를 생각했다. 새벽 무렵 술김에 눈을 뜬 순간부터 출근길 택시를 탈 때까지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죽음의 그림자를 이고 살아간다.' 그리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생각은 나를 바꾼다. '일신우일신, 일신우일신'을 외웠다. 외고 또 외웠다. 

 

열흘째 마음의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소속이 바뀌길 바라고, 마음이 안기를 찾기를 바라며, 나는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순간은 복잡다단하다. 작은 올담샘 같은 나는 쉽게 흔들리고 쉽게 철렁거린다. 같이 앉아 있지만 이 자리에서 나의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화에서도 겉돌고 취기에서도 겉돌았다.

 

봄날은 가고, 내가 진 빚들은 하나둘 쌓여가고, 내가 쓴 글들도 쌓여간다. 쿼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다시 기도를 해야 할까 싶다가도. 결국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일, 남들이 뭐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존재는 시간이 규정한다. 일의 성공이 아니라 , 꽃이 지고 피는 시간, 그 유한한 시간이 나를 규정한다. 왜 사는가를, 왜 쓰는가를, 결국엔.  

 

사람은 가끔 가다 외롭다.

외로운 사람은 언제나 아프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을 찾는다.

건강한 사람은 우울한 사람을 찾고 싶지 않아 한다.

불안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 대다수다.

건강한 사람은 미래를 준비한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만을 추억한다.

과거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면 오늘은 없다.

 

소개된 책과 글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을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서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줄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는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청춘이라는. - 심보선 <청춘> 

 

서른셋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저자들의 책이네. 한 때 수집을 했었지. (..) 왜 하필 서른셋이냐고 묻고 싶은 모양이군. 글쎄 서른셋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간 나이고 알렉산더가 거대 제국을 건설하고 죽은 나이지, 서른셋이 지나면 더 이상 청춘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요절이란 말도 서른셋이 되기 전 죽은 자들에게나 주어지는 것 아니겠나.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벨이 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말하고, 그건 생각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힌다. 날마다 우리가 쓰는 글은 곧 우리가 듣는 말이며, 우리가 읽는 책이며, 우리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잔인한 고통의 말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하겠다고 결정하지 말기를, 그런 건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부주의한 비판들과 스스로 가능성을 봉쇄한 근거 없는 두려움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뭔가 선택해야 한다면 미래를 선택하기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뒤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다.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의 서문 

 

청년이든 어른이든 잠룡의 시기는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시기다. 지옥에서는 어떻게 나와야 하는가. 지옥에서 나오려면 우선 지옥을 견디려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옥의 중압감에 몸과 마음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잠룡이라면 결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거나 쓰나미에 휩쓸려가지 않을 것이다. 잠룡이란 용의 덕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용의 덕은 원만한 자존감이다. 이 자존감이 지옥에서도 버티게 해 준다. 자존감은 어디서 생기는가. 덕과 실력을 통해서다. 덕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자존감은 자만심에 지나지 않는다. 자존감은 실력에서 나온다. 자존감의 또 다른 원천은 덕이다. 덕은 자기 바깥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는 충실함이다. - 이상수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도덕경> <주역> <로마인 이야기> <개미>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달의 궁전> <리바이어던> <새의 선물> <열정의 습관> <밥벌이의 지겨움>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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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ohmy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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