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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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칠레의 젊은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세번째 작품으로, 2021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며 전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논픽션소설nonfiction-novel이다. 논픽션소설이란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처럼 객관적 사실에 소설적 허구를 장치로써 도입하는 작품을 가리킨다. 책에 실린 다섯 개의 글은 개별적이면서도 나선처럼 이어지며 하나의 산문적 명상으로 완성되어가는데, 그 안에 담긴 프리츠 하버,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슈바르츠실트, 그로텐디크 같은 과학 세계에 지각 변동을 몰고 온 화학자, 물리학자와 수학자 들의 정신적 경험과 들끓는 지적 욕망, 치열한 이론 논쟁은 강렬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 책은 흔히 떠올리게 되는 현대 과학의 엄청난 진보와 그것이 몰고 올 파국을 경고하는 일반적인 과학 논픽션과도 다르고,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전기적 소설과도 완전히 다르다. 그보다는 깜짝 놀랄 만큼 독창적인 서사 구조와 지적인 견고함이 문장 사이사이에서 유려하게 어우러지며 인간의 정신이 가닿는 끝에서 경험하는 현저한 깨달음의 순간(에피파니)과 신경 쇠약을 숨막히도록 아름답게 그려낸 독보적인 작품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서구의 작가와 문학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가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작품의 맨 마지막에 실린 「감사의 글」에 이르러서조차 전율할 수밖에 없다.
저자
벵하민 라바투트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2.06.07

 

 

프러시안블루

디펠은 모든 병을 치유하고 영생을 선사하는 생명의 영약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프랑켄슈타인성 소유권가 맞바꾸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 영약의 유일한 쓰임새는 살충제 - 이 성질 때문에 독일군은 비살상용 화학 무기 삼아 북아프리카 우물에 부었다. 이 성분에서 탄생한 파란색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호구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 아래>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의 제복에서도 빛난다. 그 무언가는 저 연금술사의 실험에서 이어져내려 온 과오, 그늘, 실존적 얼룩이었다. 이 실험들에서 그는 동물을 산 채로 해부하고 조각조각 이어 붙여 끔찍한 카메라로 만들어서는 전기 자극을 가해 되살리려 했다. 이 괴물은 메리 셸리에게 걸작 [프랑켄슈타인]의 영감을 선사했다. 소설에서 그녀는 인간의 모든 능력 중에서 가장 위험한 능력인 과학을 맹목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했다. 

 

1782년 이후 칼 빌헬름 셸레는 극미량의 황산을 입힌 스푼으로 프러시안블루를 휘저어 현대의 가장 강력한 독약 : 프러시안산 시안화물을 만들어냈다. 

 

엘런튜링은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영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당해 가슴이 커지는 부작용을 겪은 후 시안화물을 주입한 사과를 깨물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07 하버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인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했다. 

1915년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감독한 이프로 공격 - 역사상 최초의 가스 공격 / 5천명의 병사들이 사망 

20세기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 : 질소를 생산하는 하버 보슈법  - 가용 질소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자 16억 명이었던 전 세계 인구는 100년도 지나지 않아 70억 명으로 늘었다. 오늘날 우리 몸속 질소 원자의 약 50%는 인공적으로 합성된 것이며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버가 발명한 질소 비료로 재배된 작물을 먹고 산다. 하지만 그의 기적적 발견의 원래 목표는 굶주린 대중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해군에 의해 칠레산 질산염의 운송이 차단된다 하더라도 화학과 폭약을 제조할 수 있도록 원재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하버의 질소 덕에 유럽의 분쟁은 2년을 더 끌었으며 양측에서 수백만의 사상자가 더 발생했다. 

이후 시안화물을 이용한 살충제 <치클론>을 만듦. 나치가 가스실에 살포한 치클론B가 바로 치클론. 하버의 이복 여동생, 매부, 조카들을 비롯한 유대인을 죽게 만들었다. > 근육이 경련하고 피부가 빨간색과 초록색 반점으로 덮이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입에서 거품을 토하며 죽었다. 

하버가 아내에게 쓴 편지 중 :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 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슈바르츠실트 특이점 

슈바르트실트는 지칠 줄 모르고 놀라워했다. 

"그의 공격은 가장 예상치 못한 곳을 겨냥했으며 그의 기쁨은 지식의 초원을 자유롭게 누비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하늘에 온전히 충성하지 못했다. 나의 관심은 결코 달 너머 우주에 있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사이로 누벼진 실들을,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좇았다. 그곳이야말로 과학의 새로운 빛이 비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블랙홀이 되기 위한 어떤 물체의 반지름 한계점이다. 물체가 충분한 질량을 가지게 되어 특정 밀도에 가까워지면 물체의 중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물질이 이런 종류의 괴물을 낳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정신과도 상관관계가 있을까? 인간 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 (소름...)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교수 양반, 이 모든 광기는 어디서 시작됐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춘 겁니까? 

 

보어가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을 때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에는 절대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입자는 여러 방식으로 공간을 통과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고를 수 있다. 어떻게? 순전히 우연으로. 하이젠베르크가 보기에 어떤 아원자 현상이든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기술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했다. 이전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원인이 있었지만 이젠 확률의 스펙트럼이 존재할 뿐이었다. 만물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물리학이 발견한 것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듯 세계의 끈을 당기는 합리적 신이 지배하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재가 아니라 우연을 가지고 노는 천수 여신의 변덕에서 탄생한 놀랍고도 희한한 세상이었다. 

 

(양자역학) 코펜하겐 해석 : 실재는 관찰 행위와 별개인 무언가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 물자에는 본질적 성질이 전혀 없다. 전자는 특정되기 전까지 어떤 고정된 장소에도 있지 않다. 전자가 나타나는 때는 오로지 그 순간뿐이다. 전자는 측정되기  전에는 어떤 성질도 없다. 관찰되기 전에는 머릿속에 떠올릴 수조차 없다. 전자는 특수 장비로 검출될 때 특수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한 측정과 다음 측정 사이에서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엇인지, 어디에 위치하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달처럼,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자를 실재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측정 행위다. 

 

하이젠베르크가 설명했다. 우리 시대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행위자로서의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이제 실재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분류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한계를 맞닥뜨렸습니다. 이것은 개입이 탐구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과학이 세상에 비추는 빛은 우리가 바라보는 실재의 모습을 바꿀 뿐 아니라 그 기본적 구성 요소의 행동까지도 바꿉니다. 

 

아인슈타인 -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소! 

보어 - 신에게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와...우) 

 

밤의 정원사 

그로텐디크(수학의 그림자를 깨닫고 마흔부터 수도승처럼 살게 된 천재 수학자)를 존경하는 밤의 정원사.

그는이 모든 것이 (이혼, 피부암 등) 아무리 고통스러울지언정 수학이 우리 세상을 무시무시하게 변화시키리라는 돌연한 깨달음에 비하면 부차적이라고 주장했다. 기껏해야 20년 안에 우리는 인간성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는 이해했다는 말이 아니지만 상황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가 원자를 쪼개고 최초의 빛을 포착하고 우주의 종말을 예측하는 데는 한 줌의 방정식과 구불구불한 선, 알쏭달쏭한 기호만 있으면 충분하다.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이 수식들을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조차 더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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