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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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적 글쓰기의 대가 아니 에르노. 20대 중반에 [단순한 열정]을 읽으며 '나는 왜 사랑에 늘 중독될까' 의문점을 글로 이해하게 되었다. 작년 31세에 읽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작품은 '영원히 젊을 줄 알았던 나의 엄마에 대한 복합적인 마음'을 일깨워 줬고. 분명 아니 에르노 본인의 삶을 담은 글이지만 책을 덮은 후 되려 나를 재발견하는 경험이란.

책 [부끄러움]으로 아니 에르노의 과거를 함께 조명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정의했던 규범, 법칙, 사건들'을 똑같이 나열하고 싶어졌다. 떠올리면 지금까지 이불 킥하는 여러 사건들이 있다. 하숙집 학생 전원의 학원비를 잃어버린 후 물 뜨고 달님에게 빌던 날이라던가...그때 매일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현재의 나를 엮은 거라는 걸 명료하게 인지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열두 살의 아니 에르노는 어느 평범한 일요일에 엄마를 죽이려는 아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부끄러움'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그때의 열두살로 돌아가 담담하고 명료하게 '부끄러움'을 정의한다.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했다. /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갇혀 있던 집단의 규범과 법칙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나를 관통하여 자의식과 세계 인식을 구성하는 언어의 목록도 만들었다. 세상 어디에도 6월 일요일 사건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거나 싸우지 않는 사람 또는 시내에 갈 때 정장을 차려입는 사람 같은 정상적인 범주에 더 이상 포함되지 않았다. /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것이다. 순진무구한 사립학교에서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고, 그것을 통해 말끝마다 "아무튼 그런 걸 보고 사는 게 불행한 일이야"라는 이야기 속에 범람하는 폭력, 알코올의존증, 정신병의 세계 속에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식으로 소속되고 말았다. 
 
책 소개 중 : 작은 식료품가게를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녀를 평생 따라다닌 건, 노동자 출신의 딸이라는 계급의식이었다. 학창시절, 자신의 계급은 숨겨야 했고, 침묵해야 했던 수치의 낙인이다. 부모와 같은 운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대학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하며, 부모의 계급을 벗어나지만, 그녀는 자신 위에 군림하던 부르주아의 세계에도 발을 딛지 않은 채, 혁명의 격정을 꿈꾸지 않고, 소비의 욕망에 농락당하는 세상을 직시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모습의 여자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완전한 자유로움을 갖고 파헤친다.
 
 

 
좋았던 문장 : 
 
종교란 개인적 행위로서 종교의 모든 장점을 물질적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쏟아부어야 하며, 다른 가족이나 동네 손님 대부분과 자기를 구분 짓는 일종의 선민의식의 기호이며, 시내 중심지에 살면서 거들먹거리는 부르주아에게 과거 노동자였던 사람도 신앙심과 교회에 베푸는 자비심으로 인해 그들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사회적 주장이며, 자아성취, 완벽주의에 대한 일반화된 욕망의 테두리이고, 거기에 나의 미래도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도 우리의 기억은 우리로부터 벗어나 시간의 축축한 입김, 가을 들어 처음 피우는 장작불의 냄새 같은 곳에 있다고 말한 것 같다. 변함없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자연의 희귀성, 한여름의 히트곡, 유행했던 벨트, 필히 소멸될 운명의 사물들에 추억이 고착된 나에게, 그리고 필경 내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이란 나의 항구성 혹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증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나의 분열, 나의 역사성을 느끼게 하고 확인시킬 뿐이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부끄러움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나에게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움 뒤에는 오직 부끄러움만 따를 거라는 느낌.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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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ohmy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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