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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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책방의 모임에서 쓴 짧은 글)

 

 

야근을 끝내고 택시에 오르니 새벽 2시. 회사에서 계약한 야근용 택시를 타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양화대교를 건너며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야근 후 택시 타는 시간’을 상상해 본다. 제 삶은 어디로 가나요, 아저씨.* 쳇바퀴를 그저 달리고 달리는 햄스터 같다. 그런데 숨이 좀 헥헥 차고, 초롱초롱하던 눈빛 대신 물리면 목숨 걸고 물어뜯을 듯한 눈빛을 장착한… K-햄스터(이하 노스터).

 

수많은 자기계발서는 변하라고 말한다. “변하라!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니. 구하라! 네가 바라는 것을 구체화하여 닿게 만들어라.” 그런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변해야 할지,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신을 믿는다면 기도를 하겠지? 이 노스터의 삶을 벗어던지게 해주세요. 로또는 바라지도 않아요, 다음 카드값 내려고 노동하는 이 루틴을 잠시 멈추게 해주세요. 동시에 냉정한 신이 단호히 말한다. 뭘 어떡하니. 이러다가 회사에 휴가를 내거나 퇴직금을 받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노스터로 돌아오겠지. 

 

우주의 힘도, 신도 믿지 않는 나는 주문을 외운다. ‘장소 바꿔.’

 

사람마다 각자의 삶의 지혜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꽤 괜찮은 지혜 하나를 들려주겠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고 싶다면, 내가 놓인 장소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굳이 내 안의 무언가를 뜯어고칠 필요는 없다. 장소만 바뀌면 다 바뀐다. 일도, 사람도, 사랑도, 나의 하루도.

 

노자 선생님이 말했다. 상산약수 - 아름다운 인생은 물 흐르듯 사는 것이라고. 그런데 아무리 건강한 물고기라도 누군가 쓰레기를 계속 던지면 숨 쉬기도 힘든데, 쉬지 않고 헤엄치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럴 땐 물을 바꾸는 게 답이라는 게 이 노스터의 지혜다. 물론 여러분의 팔자는 노스터와 다를 수도 있으니, 물 흐르듯 흘려듣길 바란다.

 

여하튼, 노스터는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한다. 노스터, 이제 제주에서 살아볼게요.

 

그 후 8년이 흘렀다. 이제 더는 ‘장소 바꿔’라는 주문조차 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물고기, 아니 노스터는 본인과 참 잘 맞는 터를 찾은 것 같다. 노스터는 그 후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노래 <이별택시> 가사 일부를 개사. 이 노래가 들릴 때마다 야근택시가 떠오른다. 절대로 자의로 듣지 않는다. 하필 많은 이들의 18번곡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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