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파먹기 - 권혜영
(여분의 해마)
때때로 출근길에 콩나물 시루마냥 지하철 인파에 떠밀리다 보면 숨이 잘 안 쉬어진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출근복을 훌훌 벗고 침대에 눕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 이어폰을 꽂고 해마의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 지하철에서 콩나물이 되는 삶을 견딜 수 있다. 조금 더 살아 볼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콩나물이다가 사무실에 도착하면 파티션 속의 체스 말로 변신한다. 업무 중간에 쉬는 시간은 별로 많지않지만화장실 안에서라도 떡밥을 확인한다. 맞은편 책상에 앉은 직원에게 모함을 당한날에는 컴백 티저가 뜬다.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팀장의 눈치를 하루 종일 봐야 하는 날에는 공식 굿즈 판매처 링크가 올라온다. 그러면 체스 말의 맡은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그래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해마네 회사에서 사 달라고 하는 이것저것을 살 수 있고, 내가 많이 살수록 해마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존재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해마의 노래를 더 오래 들을 수 있따.
좁은 방으로 돌아오면 나는 콩나물도 아니고, 체스 말도 아닌, 바야흐로 병든 닭이 된다. 꾸벅꾸벅 잠만 잔다. 자다 깨면 늦은 저녁으로편의점 김밥과 어제 먹다 남은 배달떡볶이 같은 걸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다. 그런 음식들을 주워 먹으며 해마가 등장하는 영상들을 찾아본다. 소속사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그룹 예능. 편집한 입덕 포인트 영상. 무대 직캠 같은.
영상들은 다음 항목으로, 다음 항목으로, 끝없이 재생된다. 해마가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나는 콩나물이었던 것도, 체스 말이었던 것도, 닭처럼 졸았던 것도 곧잘 잊게 된다. 그냥 한 사람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된다.
껍데기만 보고 멋대로 좋아해 버려서 미안. “괜찮아요. 앞으로도 저는 당신의 꿈과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성심껏 더울 거니까요.”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계단 아래 계단, 그 아래 다시 또 계단.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구렁텅이였다. 발밑으로 펼쳐진 공간의 밑바닥이 가늠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보다 아래의 위치한 사람의 검은 머리통, 그리고 가운데로 수렴하는 계단 뿐이었다.
(사랑 파먹기)
생일카페에서 /
이거 무슨 줄이에요?
그러자 앞줄에 서 있던 사람이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오타쿠입니다. 지나가세요. 이거 맛집 줄 아니에요.
누구라도 좋으니 한 번쯤은 마음을 사로잡히고 싶다. 한 시간이 넘도록 그 사람만 생각하며 밖에서 기다려 보고 싶다.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보고 싶다. 그들과 똑같이 응원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 보고 싶다. 그게 대체 뭔지 궁금했다. 그대신 윤주가 가진 이상의 것은 요구하지 않는 사랑. 좋아한다고 해서 의무처럼 몸을 부대끼지 않아도 되는 사랑. 되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은 사랑. 그 정도 무게라면 윤주가 지금 가진 삶의 에너지 안에서 감당 가능했다.
(유예하는 밤)
- 아마 모르실 거예요. 워낙 조용하게다녀서. 그래도 걔가 정말 좋아했어요.
좋아했어요, 라는 문장을 읽자 그만 울컥했다. 분하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고마워서. 그동안 살면서 정말 듣고 싶었던말이었는데 가기 전에 듣게 되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살짝만 시끄럽게 다녀 줬으면 좋았을 텐데. 잘 듣고 있어요. 한마디 정도 해 줬더라면 내 마음속 깃든 빛이 열 촉은 밝아졌을 텐데.
(다음 챕터)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마거린 애트우드, 로알드 달
오늘 고른 책은 너무 지루하다. 세 번째 챕터까지 읽고 나서 한숨을 좀 쉰다. 페이지를 한 장 넘기자 여백의 종이에 소제목 하나만 달랑 쓰여 있다. 나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 비어 있는 흰 종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여기 어디쯤에 끼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남의 머리끈을 갑자기 잡아 당기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이런 세상이 불합리하면 법과 제도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때마다 난 소설을 생각한다.
쓸 때마다 크게 웃었던 순간이 한 번씩은 존재했다. 그 짧은 웃음이 가져다준 위로를 오래 기억한다.
나는 웃으면서 썼는데 소설 속 인물들은 꼐속 울고 있네. 이제는 그만 울고,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해설 - 최가은 문학평론가)
“그때부터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단 뒤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소설집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사랑을 파먹는 일’이 우리의 이 엉망진창인 세상을 구원할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을까? 권혜영의 세계가 하지 않는 것은, 소설집의 일그러진 표정을 특별한 종류와 사랑과 희망으로 쉽사리 대체하는 일이다.
인물들은 무언가를 중단하는데, 이제 이들의 중단은 자연화된 우리의 사회적 관계들을 조금씩 비트는 것에 기여한다. 이들의 중단은 궁극적으로 자연화된 우리의 사회적 관계들을 조금씩 비트는 것에 기여한다. “어딘가 닳아 있”는 채로, ‘고인 물’처럼, 유독한 습관처럼 지속되던 관계. ‘사랑’이라는 숭고한 단어로 치장되었던 이 투기의 관계를 인물들은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멈춰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중단에서 자연스레 ‘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리게 된다. 문학사에 등장했던 가장 기이한 선언 중 하나인 그의 부정 선언. “하지 않는 게 저는 더 좋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권혜영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어지러운 표정들은 일종의 ‘내기물’로서의 제 위치를 한껏 끌어내린 자들의 것이다. 환희와 절망, 경외와 참담함이 뒤섞인 얼굴로 자신의 미래를 증명하는 일을 그만둔 그들의 표정을 걸쳐 입으며, 이제 책을 덮은 우리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당신이 기대하는 것은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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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지친 사람들이 계속 지치는 것보다 멈추길 선택한다. 사회는 아니 독자인 나까지도 이들의 중단을 기이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읽고 나선 알게 된다. 그들은 구원이 필요했고, 용기를 냈다고.